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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창작극 "당나귀들"/당나귀만도 못한 한심한 인간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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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창작극 "당나귀들"/당나귀만도 못한 한심한 인간들아 !

입력
2003.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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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속담에 '당나귀는 예루살렘을 가도 당나귀'라는 말이 있다. 멍청한 사람은 어디를 가도 멍청하다는 뜻이다. 영어에서도 당나귀(Donkey)는 '바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소금을 지고 가던 당나귀가 물에 빠졌는데 짐이 가벼워지자 솜을 지고 가면서도 똑 같은 행동을 했다는 우화도 있다.국립극단(단장 박상규)이 22∼3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리는 창작극의 제목은 '당나귀들'(정영문 작·김광보 연출)이다. 제목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듯 멍청한 사람들의 한심한 모습을 그린 연극이다. 물론 멍청함을 상징하는 동물에는 닭도 있지만 머리가 나빠서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닭에 비해 당나귀는 뭔가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갈팡질팡하며 문제를 일으키니 더욱 심각하다.

연극은 전운이 감도는 긴박한 상황을 맞은 어느 나라의 왕실에서 시작된다. 왕은 이미 도망갔고, 남은 장군과 신하들은 적에 대항해서 싸울지, 투항할지를 한참 동안 토론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이쯤이면 시대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만도 하지만 배경이 모호한 부조리극으로 연출돼 꼬집어 시대를 특정하기 어렵다.

부조리극은 언뜻 생각하면 어렵지만 연출자 김광보씨는 이 대본을 읽고 "기발나게 재미있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서구의 부조리극과 다르게 우리 상황과 맥락이 닿는 면이 있고, 빠르고 경쾌한 입담이 극 전체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관객은 왕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장군과 신하, 학자, 광대 등을 보며 주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당나귀를 연상하며 허탈감에 빠질텐데도 '당나귀들'의 고민과 토론은 끝이 없다.

광대는 "당나귀 앞에 똑 같은 당근 두 개를 동시에 내밀면 당나귀는 어느 것을 먹을지 고민 끝에 굶어 죽게 된다"고 말하며 한심한 인간들을 비꼰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허무개그'를 연상시키면서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 "이건 우화일 뿐이고 실제로 당나귀에게 당근 두 개를 주면 맛있게 두 개를 다 먹죠. 당나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모자라지 않으니까요."

세익스피어의 잔혹극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에서 앤드러니커스 장군 역을 한 이문수(장군 역)와 영화 '동승'에서 주지 스님 역을 맡은 오영수(신하 1역) 등이 지난해 제12회 국립극장 창작공모 희곡 부문에 만장일치로 당선된 이 희곡의 팽팽한 입담을 재현한다. 제 1대 품바인 정규수(신하 2역)는 극 중에서 '변태'의 누명을 쓰는 코믹한 역할을 맡는다.

세상살이의 짜증을 날려 보낼 연극으로 스트레스 풀이에 적합하다. 물론 극의 배경은 굳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상의 나라이다. (02)2274―3507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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