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한미 정상회담 가운데 성공하지 않은 회담이 있을까. 겉으로 드러난 회담의 결과만을 두고 볼 때 실패한 회담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회담의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을 공동성명에 두면 더욱 그렇다. 미 뉴욕 타임스가 한미 관계의 재앙이라고 평했던 2001년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간의 회담도 공동성명만 보면 성공작이었다.1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첫 만남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핵 문제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등에서 포괄적 합의를 담은 성명 등을 근거로 회담의 성공을 자축하는 정부측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도 "모든 걱정을 털어내고 희망만 갖고 돌아간다"며 회담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런 일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뒤뚱거리던 양국의 대북정책은 공동의 보조를 취할 여지가 커졌다. 두 정상이 서로 통하는 코드를 찾은 것도 큰 소득이다.
하지만 그 '성공'의 원인이 우리의 정책을 미국의 눈높이에 맞춘 데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과연 만족할 만한 결과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은 회담을 앞두고 많은 것을 접었다.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을 선택방안에서 제외토록 하겠다던 의지도, 한미 동맹관계의 재조정을 요구하겠다던 소신도 슬그머니 테이블 아래에 내려놓았다. 남북 교류와 협력은 핵 문제와 별개로 추진한다는 대원칙도 무너졌다.
그런데도 북 핵 문제를 보는 미국의 입장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회담이 끝나자마자 미국의 관리들은 대북 선제공격 방안이 여전히 책상 위에 올려져 있음을 되새기고 있다. 정부가 결코 이번 회담 결과에 자만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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