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관한 사항은 법관의 고유 권한이다. 어떤 판결이나 결정도 법 규정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내려진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법관의 권위가 존중되는 것은 국민이 그의 판단을 믿고 따라야 사법질서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결정이 현저히 보편성에 위배될 때, 아무리 선의로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울 때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경매부동산 광고 배정을 둘러싸고 2,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법원 공무원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서울지방법원의 판결(16일자 한국일보 7면 보도)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다. 선고 유예란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해 주고, 별다른 사고 없이 그 기간이 지나면 선고의 효력도 소멸되는 가벼운 형벌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그 형을 받을 경우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이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첫째 형평의 원칙에 크게 벗어난다는 점이다. 다른 공무원이 2,000만원 이상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면 선고유예를 내렸겠느냐는 의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서 선고유예 판결이 처음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수뢰 공무원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고도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심을 씻기 어려울 것이다.
이 사건이 법원 공무원의 생리처럼 굳어진 고질적인 비리라는 점에서 보면 더 엄정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지난해 법원 경매비리에 관한 검찰의 일제수사에서는 경매 부동산 광고를 신문사에 배정하는 업무와 관련해 2,200만원 이상 받은 사람이 9명, 1,500만원 이상 받은 사람이 23명이나 적발됐다. 이 가운데 23명을 수뢰액수가 적다고 불구속 기소한 검찰 조치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구속 기소자에게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 법원의 처사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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