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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방미외교 평가 / 전문가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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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방미외교 평가 / 전문가 좌담

입력
2003.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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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외교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린 평가를 낳고 있다. 가톨릭대 박건영(朴健榮) 국제학부 교수와 세종연구소 홍현익(洪鉉翼) 안보연구실장을 16일 초청, 참여정부 첫 정상외교의 성과와 논란을 짚어보았다.

박건영 교수=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는 두 지도자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신뢰를 쌓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코드를 맞춘 만큼 향후 한미관계의 개선이 기대된다. 지금까지 부시 대통령측의 가장 큰 불만은 협상 테이블에서 군사력이라는 선택방안을 제외한 채 북한을 대하라는 우리측 요구였다. 반면 노 대통령은 전쟁은 오해와 불신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먼저 대화를 하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번 회담을 통해 양측의 입장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았다고 본다. 그러나 6박7일간 노 대통령이 보여준 정책기조가 방미 전과 비교할 때 180도 달라진 듯한 인상을 준 것은 문제다. 지도자끼리는 신뢰가 쌓였지만 국가적 차원에서는 불안정성이 증가했다.

홍현익 실장=노 대통령의 입장이 변한 것은 북한의 책임이 컸다. 베이징 3자 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언급한데다, 남한의 회담 배제를 요구한 상태에서 화해협력 기조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전쟁의 위협이 증대된 만큼 우선 급한 불부터 끌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인 평화번영정책에서 중점이 '번영'에서 '평화'로 옮겨간 셈이다. 그렇다면 취임 초 대미관계에서 왜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했는지가 문제로 남는다. 불과 몇 달 후면 식언(食言)이 될 언급들이 너무 많았다.

박 교수=대통령은 장소와 관계없이 모든 부류의 상대와 청중을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한다. 방미 기간 중 발언은 미국 뿐 아니라 북한, 그리고 중국 등도 주목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없었다면 정치범수용소에 있었을 지 모른다"는 언급 등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분위기에 맞추려는 듯한 이 같은 말을 듣고 미국인은 즐거웠을 지 모르지만, 북한은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버금가는 비난으로 들었을 것이다. 중국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문제는 이 같은 발언으로 북한,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악화할 때 동북아에서 우리의 중재적 역할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것이다.

홍 실장=한미정상회담으로 경제적 대외 신인도는 제고됐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은 너무 '임기응변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외교안보팀에 전략관이 없어 보인다. 취임 초에는 자주외교, 상호 평등적인 한미관계를 성급하게 전면에 내세웠다. 평화번영정책도 DJ 정권의 햇볕정책을 단순히 계승하는 차원이 아니라 동북아 중심역할, 평화체제 구축 등 아주 적극적인 미래상을 표방했었다. 하지만 출발도 못하고 방향전환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책의 일관성이 불과 몇 개월 만에 깨진 것이다. 이번 변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북한의 모험주의가 상존하는 한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방미 후 확인된 것은 한미관계가 북한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박 교수=한미동맹의 핵심적 현안 중 하나인 작전통제권 환수문제도 아주 모호하게 처리됐다. 노 대통령이 통치권적 차원에서 작전권 환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장기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성명에 언급된 역동적 동맹의 의미가 살 수 있다. 핵심을 비켜간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 자주국방이 이뤄질 수 있을까. 자주국방을 위해선 어느 정도의 비용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홍 실장=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노 대통령이 미국에 체류 중이던 15일 주한미군 재배치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발언을 했다. 미국이 군 재배치를 거론하는 이면에는 북한의 공격 위험도를 낮추는 한편, 역으로 선제공격의 유연성을 확보해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러나 한국의 불안감을 높여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계산도 있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복합적인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박 교수=공동성명에서 경제협력과 핵 문제를 사실상 연계한 것은 기준과 방향을 좀더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다만 이처럼 민감한 사안을 미국에서 합의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비쳐져 북한을 적으로 만든 것이다. '민족 공조'를 일관되게 요구해온 북한 입장에서 보면 '대미 추종'에 다름 아닌 것이다. 대북 지렛대 역할을 자청해서 포기한 것이다. 미국의 외교는 순종하는 국가에게는 계속 순종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 동안 미국은 노 대통령을 말하기 어려운, 다시 말해 터프(Tough)한 사람으로 여겼겠지만, 만난 후에는 '말하기 편안한 상대'로 해석된 'Easy Man'으로 불렀다.

홍 실장=실기(失機)한 측면도 있다. 북한이 베이징 회담에서 핵무기 보유를 시인했을 때부터 단호한 태도와 입장을 보였어야 했는데, 대북 채널을 유지하기 위해 미적거린 것이다. 당장 23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대북 제재 방안이 모색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대북송금 중단, 마약검열 강화 등이 우선적으로 거론될 것이다. 우리는 '추가적 조치'에 합의한 만큼 미일 양국의 대북 제재에 동참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남북관계는 더 악화할 테고, 자칫 미국과 갈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일단 미일 및 미중 정상회담까지 지켜본 뒤 진로를 잡을 것이다. 퇴로가 차단된 채 코너에 몰린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박 교수=부시 행정부에는 대북정책이 아니라 대북태도만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계속 몰아붙이면 굴복하거나 '내파(內破·implosion)'할 것으로 믿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적 해결은 쉽지 않다. 더욱이 북한이 인정했다는 핵무기의 실체 또한 모호하다. 미국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태도를 무작정 좇았다간 '허수아비 때리기' 놀음에 당할 수도 있다. 좀더 신중한 접근이 요망되는 시점이다.

/정리=이동준기자 djlee@hk.co.kr

사진=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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