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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길위의 이야기/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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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길위의 이야기/잠

입력
2003.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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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터가 있는 경기도 이천에서 나는 쌀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쌀보다 더 비싼 값에 팔린다. 내 이웃의 농부는 이천의 토질이 좋고 기후가 알맞고 물이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비료며 농약을 덜 쓰는데도 이천의 벼는 튼튼하고 수확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햅쌀로 지은 밥의 맛이 영 그 전만 못한 것이었다.먼저 믿을 만한 사람이 지은 쌀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태풍이나 수해로 쓰러진 벼에서 나온 쌀이 아닌 것도 확인했다. 햅쌀이니 쌀의 수분 함유량은 적당했고 밥을 지을 때 물의 양도 알맞았다.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논 주인이 와서 맛 없는 쌀이 이 집에 온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며 쌀을 도로 가져갔다. 알고 보니 그 쌀은 국도변에 있는 논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도로 근처에 있는 논에서도 제일 도로 가까운 쪽에 서 있는 벼는 밤중에 지나가는 차들이 비추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깜짝깜짝 놀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그런 벼는 줄기가 약하고 결실이 야무지지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맛이 없다.

대도시의 네온사인 아래 벼는 없지만 나무는 있다. 잠을 빼앗기고 늘 초췌한 나무가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서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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