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 연쇄 자살폭탄 테러 사건은 이라크전 승리로 득의만면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중동 구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이라크에 민주 정부를 수립하고, 새 중동평화안을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아랍권에 개혁과 '민주화'를 유도한다는 부시의 비전은 출발부터 난관에 부닥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미군 철수를 앞장서 외치는 시아파 세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주도의 중동평화안은 이스라엘의 수정 요구 및 테러와 진압의 악순환으로 낙관을 불허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중동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그는 "중동 지역에 역사적 기회가 왔다. 이라크의 독재자는 사라졌고 테러리스트들은 최후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중동에서 개혁 세력이 힘을 얻고 있으며 자유의 열망이 높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시는 '자유 아랍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중동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제의하기도 했다. 부시의 구상에 따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중동평화안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1년여만에 중동 지역 순방 외교에 나섰다.
특히 사우디 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키로 한 것도 이라크전 승리로 사우디의 필요성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지만, 미군 주둔을 공격의 제1 명분으로 내세워 온 테러조직과 과격 이슬람 세력에 맞서 사우디 정부가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구상은 아랍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차원에서 아랍의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아랍인들은 미국의 '선의'를 믿지 않고 있다. 미국의 '반(反)테러 전쟁'은 아랍인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 제거' 또는 '이슬람적 가치에 대한 공격'으로 비칠 뿐이다.
이들은 미국이 아랍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의 정책과 목적을 지지할 정부를 강요하려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우디 자폭 테러는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막기 위한 경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중동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부시의 중동 구상은 어떻게 이러한 반미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미국의 '선의'를 이해시킬 것인가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미국의 유대계 로비단체들은 부시의 중동평화안에 대해서도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년에 대선을 앞둔 부시로서는 국내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테러와의 전쟁보다는 경제 회복에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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