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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세계]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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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세계]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입력
2003.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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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팀 50여명의 집 전화번호는 모두 같은 국번으로 시작된다. 10여년 전 병원 창설멤버로 부임한 박승정 심장내과 교수가 팀을 꾸리며 의사, 간호사, 기사를 막론하고 "병원 근처로 이사오지 않으면 뽑지 않겠다"는 전제를 달았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지금 응급환자 발생시 10분 내 도달할 거리에 살고있다. "심장 혈관이 막혀 실려온 환자는 30분 내에 바늘이 들어가야(중재시술이 실시돼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하룻밤 5번씩 병원 호출을 받은 적도 있다.뿐만 아니다. 이 곳의 시술은 일반적인 일과보다 2시간 빠른 오전 6시30분 시작된다. 오전 6시엔 전원 출근 완료. 박 교수 자신의 말처럼 "독재하다시피 밀어붙여 정착된" 심장내과만의 관행이다.

농삼아 "요즘 같은 민주화시대에 그런 독재 카리스마가 통하느냐"고 묻자 태연스레 돌아온 대답. "통하던데요." 순환기내과 의사는 '박승정 같은 사람'과 '박승정 같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자존심 세고, 고집불통에다가, 하루 5시간만 자는 무서운 일욕심을 가리키는 말이다.

"카리스마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감동'이라고 봅니다. 우리 팀의 모든 간호사들은 각자 연구 주제가 있고, 모든 기사는 전문 역할이 따로 있습니다. 모두 자기가 맡은 분야에선 최고라는 자긍심이 충천하지요. 이런 면에 감동한 결과 튼튼한 팀워크가 만들어진 겁니다."

남 눈엔 '독재', 박 교수에 따르면 '감동'에 의해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팀은 관상동맥질환 중재시술을 가장 많이 하는(한달 150건) 최고의 의료팀으로 자리잡았다. 과학논문인용색인(SCI) 저널에 등재되는 논문만도 연 15∼20편. 최근 약물코팅 그물망 시술에 대한 박 교수의 논문은 세계적인 저널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국내 최초로 실렸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연사하는 경우 80%는 급성 심근경색. 심장은 한시도 쉬지 않고 근육을 움직여 온몸에 피를 펌프질해야 하는데 심장근육 자체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관상동맥)이 막혀 심장근육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과거 이러한 관상동맥질환에 대한 치료는 가슴을 절개하고 심장을 잠시 멈춘 채 막힌 혈관을 다른 부위의 혈관으로 대체하는 수술이 유일했다. 1977년 수술을 피해, 허벅지 대동맥에서부터 심장까지 가는 관(카테터)을 밀어넣어 혈관을 뚫는 내과적 중재시술이 나왔다. 처음엔 풍선을 부풀려 혈관을 넓혔으나 혈관이 다시 달라붙는 재협착률이 40∼45%나 돼 근본적 치료가 되지 못했다. 재협착률을 줄이기 위해 풍선 대신 금속 그물망(스텐트)을 쓰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재협착률이 25%나 됐다.

그러다 2개월 전(외국에선 2년 전)부터 약물을 코팅한 그물망 시술이 도입됐다. 결과는 획기적이었다. 박 교수는 지난 두 달간 약 150명의 약물코팅 스텐트 시술을 한 결과 재협착률이 4%에 불과했다. 항암제 탁솔이나 면역억제제 라파마이신이 4∼6주간 그물망으로부터 분비돼 암세포를 억제하듯 혈관 내피세포가 다시 자라는 것을 막는다. 박 교수는 "재협착률 4%의 치료법은 더할 나위 없는 수준으로 보험적용으로 비용문제만 해결된다면 기존 그물망 시술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한다. 혈관 손상부위가 많아 수술을 꼭 해야만 하는 경우도 크게 줄 전망이다. 박 교수는 "지난 두 달만 보아도 수술 환자가 이전의 3분의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고 덧붙인다.

관상동맥질환은 크게 두가지. 관상동맥이 50%쯤 막혀 심장근육이 '빈혈' 상태가 되면 가끔 3∼5분 가슴이 아픈 협심증을 앓고, 완전히 막히는 심근경색이 일어나면 6시간 안에 전체 심장근육이 괴사, 멈추고 만다. 심근경색으로 10명 중 4명은 손도 쓰지 못한 채 1시간내 급사한다. 나머지 6명도 6시간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나마 응급실로 달려오면 다행이죠. 쓸데없이 손 따고 약 먹느라 시간을 놓치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평소 협심증을 앓던 사람은 차라리 낫습니다. 아무 증상이 없다가 급성 심근경색이 오는 경우 응급실을 찾지 않습니다.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다면 6시간 내 처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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