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던 곳이 바로 국정원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고위간부 인사에서 3분의2가 옷을 벗는 등 국정원 내부는 5년마다 불어왔던 '인사태풍'에 뒤숭숭하다. 업무특성상 가장 조용하고 남의 이목을 끌지 않아야 할 정보기관이 이렇듯 정권교체와 더불어 '주기적인 홍역'을 앓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국정원이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옛날과는 다르다'는 희망을 엿보게 한다. 조직과 기능은 그대로 둔 채 사람만 바꾸면서 과거의 관행을 답습했던 것과는 달리, 미흡하나마 외과적 수술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담당인 2차장 산하의 대공정책실을 정말로 없앤다면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대정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곳이 바로 국정원을 '비밀경찰'로 왜곡시켜왔던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한결같이 '국익'(國益)이라는 미명 아래 '비밀경찰'의 존재를 묵인하곤 해왔다. 1961년 '중앙정보부'라는 간판을 걸고 탄생한 우리나라의 정보기관은 모태(母胎)가 독재권력이었던 탓에 처음부터 '비밀경찰'이라는 기형적 모습이었다. 이후 정치적 고비를 맞아 '국가안전기획부'에 이어 오늘날의 국가정보원으로 이름표를 바꿔달며 조금씩 정상의 모습으로 변해왔다. 그런데도 정치 경제 사회의 구석구석에 기관원을 내보내 국가안보와는 관련 없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엿듣는 것은 여전했다. 그 동안 '대정실'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해왔는지 그 내용을 국민이 안다면 아마 국정원을 폐지하라는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비밀경찰'의 추한 얼굴을 없애려는 현 정부의 노력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국정원이 제대로 된 정보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이 취임 전 "국정원의 내부 정보가 밖으로 줄줄 새고 있다"고 언론에 밝혔던, 바로 그것이다. 다른 어떤 정부 부처에 비해서 보안(保安)이 생명이어야 할 정보기관에서 정보나 속사정이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더 이상 정보기관으로서 존재가치가 없다.
오늘날 국정원의 조직이 이토록 기강이 흐트러진 이유로는 단연 '정치적 오염'을 꼽을 수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정보기관은 가장 악명을 떨쳤지만 역으로 조직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던 것이 YS정부 출범 직전 여권이 '친YS'와 '반YS'로 나뉘어질 때, 당시 일부 안기부 직원은 현직 대통령보다는 김영삼씨에게 충성을 보였고 후일 '감투'로 보상을 받았다. 또 YS정부 시절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낀 또다른 직원들은 몰래 김대중씨에게 다가갔고 DJ정부가 출범한 이후 당연히 국정원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다.
이렇게 해 국가와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는 개인의 이해를 앞세우는 풍토가 어느 새 조직에 뿌리 내려 문자 그대로 사분오열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통상 정보기관원이 조국을 배신할 때 이념적 신념, 조직에 대한 불만, 개인적 이익 등 세 가지 사유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국정원에는 후자의 두 가지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 국정원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싶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고 들어본 사람들의 경우는 그렇다.
국정원이 또다시 '홍역'을 앓지 않으려면 바로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됐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만, 어쩐지 5년 뒤에 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질 것 같다.
신 재 민 정치부장 jmnew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