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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미술관 근대회화 명품전/"대중의 눈높이 맞춘 吾園 본격 근대미술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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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미술관 근대회화 명품전/"대중의 눈높이 맞춘 吾園 본격 근대미술의 출발점"

입력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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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 강점기 10만석의 재산을 쏟아 부어 만든 간송미술관(서울 성북구 성북동 97-1). 그 소장품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려금동삼존불(국보 72호) 훈민정음(국보 70호) 등 20여 점의 국보와 보물 외에도 수천 점이 있는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1971년부터 매년 봄·가을 두차례씩 모두 60여회의 전시를 통해 3,000여 점이 공개됐지만 아직도 화수분처럼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가을 '추사명품전' 때는 수천명의 관람객이 몰려들기도 한 이 미술관이 이번에는 깊숙이 보관해 둔 회화 100여 점을 모아 18일부터 6월1일까지 전시회를 연다. 제목은 '근대회화명품전'. 그 동안 고미술품과 조선시대 회화를 위주로 전시하던 이 미술관이 '근대'라는 시기를 못박고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처음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근대의 개념. 1908년 고희동이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고 서양화의 기법을 도입한 때로 보는 종전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중국풍의 서화를 고루편벽으로 규정하고 추상미를 추구한 추사 김정희(1786∼1856)를 근대미술의 시발점으로 여긴다. 하지만 추사의 서화도 방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고 고답적이어서 본격적인 근대미술은 당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폭발적 인기를 끈 오원 장승업(1843∼1897)의 그림부터 잡았다. 최완수 학예연구실장은 "근대미술은 서세동점(西勢東占)과 청조 문물의 영향으로 개화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형성된 독특한 화풍으로 봐야 한다"며 "이후 항일·친일 경력에 상관없이 독창적인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작품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는 오원을 필두로, 추사의 제자인 허련(1809∼1902), 오원을 사사한 소림 조석진(1853∼1920) 심전 안중식(1861∼1919), 일제 때 활동한 이경승 노수현 이상범 김은호 황철 고희동 등 27명의 작품이 나왔다.

이 중 천민출신으로 조선말기 화단을 휘어잡은 오원의 산수화와 화조도는 중국 화풍에서 벗어난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당시 최고의 소장품으로 여겨졌던 것들이다. 이경승의 나비그림도 볼만하다. 그림을 그리는 데 어렵기로는 나비만한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나비그림은 예부터 고난도 기술을 요구했다. 청대의 작품이 화초나 괴석과 함께 그린 데 비해 이경승은 오로지 나비만을 소재로 박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섬세하고 화려하게 표현해 마치 도감을 보는 듯하다.

전시와 함께 눈여겨볼 것은 2층짜리 미술관 건물. 1938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와 종로의 화신백화점 등을 설계한 한국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다. 건물에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짙은 숲에서 불어오는 삽상한 봄바람과 희귀하다는 백모란, 자목련의 만개한 자태를 팁으로 만날 수 있다. (02)762―0442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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