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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말해 버릴까?

입력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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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 시게키 글·양광숙 옮김·김유대 그림 보림출판사 발행·7,000원·초등 저학년용

뮤지컬 연출가 김민기가 1987년 내놓은 노래극 앨범 '아빠 얼굴 예쁘네요'에는 시험 보는 날 탄광촌 아이들이 가슴 두근거리며 교실에 있는 장면이 나온다. 조마조마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옮긴 음악을 배경으로 숨죽인 목소리의 상황 설명이 흘러나온다.

"시험지가 선생님 품에 안겨 들어온다. 시험지가 나누어진다. …잘못해서 연필을 떨어뜨렸다. 연필을 주우려다가 나도 모르게 순이 시험지를 보았다. 내가 못 쓴 답을 순이는 썼다.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썼다. 가슴이 뛴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비워둔다. 휴―"

유치원 정도 다닐 나이가 돼 나쁜 짓 좋은 일 가릴 줄 아는 아이는 남 몰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단히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더구나 그 일이 들통 나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할 처지라면 고민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럴 때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어려움은 무얼까.

일본 동화작가이며 현재 초등학교 교사인 히비의 이 짧은 동화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1인칭 시점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선생님이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나눠 준 나팔꽃 씨를 화분에 심는 날, 다카시는 호기심에 받아 든 씨앗을 입에 넣고 씹다가 쪼개버리고 만다.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이른다고 놀리자 화가 난 다카시는 옆에 있던 요노와 싸움까지 벌인다.

하지만 미코의 도움으로 씨를 새로 얻어 화분에 심은 다카시. 그날 늦게 교실에 두고 온 모자를 찾으러 갔다가 자신을 놀리던 아이들이 생각 나 몰래 다른 아이들 화분에 있는 씨를 자기 화분으로 옮긴다. 그때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정말 문제는 열흘 뒤에 생겼다. 분명히 씨를 하나씩만 심었는데 다카시의 화분에는 싹이 3개나 한꺼번에 돋았기 때문이다.

이 동화에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겪는 마음 고생은 물론, 나쁜 일을 한 줄 알면서 그 상황을 합리화하는 아이들의 태도까지 그려져 있다. 다카시는 자신의 행동을 '씨앗을 옮겨 심었다고 생각하는 건 언젠가 그런 꿈을 꾸었기 때문이지, 정말로 그런 일은 없었다'는 식으로 묻어두려 한다.

결국 이해심 많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문제는 해결되지만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죄책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이들은 별다른 의도 없이 저지른 일이 마음에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 마치 일기장을 보듯 읽을 수 있고, 어른도 문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내면을 보는 것은 물론 해법까지 참고할 수 있는 재미와 사실성이 넘치는 동화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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