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이전에 매트릭스 없고, 매트릭스 이후에 매트릭스 없다.영화 '매트릭스'는 단순히 흥행 영화를 넘어 대중 문화, 패션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영화에서 '매트릭스' 장면이 패러디되고, 그 구도가 변주되는 것은 '매트릭스'가 철학적으로 수많은 '의미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꿈에 불과하며 진짜 세상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통해 실상과 허상, 이미지와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매트릭스' 1편(1999)의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자신을 찾아 온 친구에게 디스켓을 넘겨주는 장면은 3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암시한다. 네오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책 가운데 '허무주의에 관하여'라는 장을 펼친 뒤 디스켓을 꺼낸다.
보드리야르는 누구인가. '이미지와 허구, 복제품이 원본과 현실을 압도하는 시대, 현실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 이가 아닌가. '매트릭스'는 '꿈이 생시이며 생시가 꿈'이라는 장자의 호접지몽(蝴蝶之夢)을 연상시키는 개념을 통해 이미지가 현실을 조종하는 탈 현대의 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철학자 이정우는 SF 영화를 다룬 '기술과 운명'이라는 저서에서 이 영화가 혹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 자체가 매트릭스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무수한 선입견, 거미줄처럼 쳐진 편견을 보여주는 현실 세계에 대한 통렬한 알레고리라고 평했다.
그러나 '매트릭스'에 심각한 질문과 철학적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매트릭스'는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의문이 영화의 날줄을 만들고, 가짜에 갇힌 인류를 진짜 세계로 이끌어낸다는 구원의 기획으로 영화의 씨줄을 만들었다.
근착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매트릭스'의 세계를 '네오 복음'으로 비유했다. 애초부터 3부작으로 기획된 '매트릭스'는 구세주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오(Neo)라는 이름부터가 구세주인 '그'(The One)의 철자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매트릭스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가짜 세계를 지칭한다. 이 가짜 세계에 대항하기 위해 모피어스는 구세주인 '그'를 찾아 헤맨다. '그'로 지목된 이가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인 네오이다. 모피어스는 구세주의 앞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으로 비유할 수 있으며, 암살당한 네오를 사랑의 입맞춤으로 부활시키는 여인 트리니티(Trinity)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여기에 '공각기동대' '터미네이터'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온갖 영화적 관습, 발레처럼 우아하게 업그레이드된 쿵후 액션, 심오한 불교적 선문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에서 원용한 판타지, 포스트모더니즘과 음모론 등을 절묘하게 뒤섞었다. '매트릭스'는 미몽 속에 있던 중생 네오가 선각자 모피어스를 만나 깨달음의 길을 걷는 과정으로 읽을 수도 있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쿵푸와 공중 부양을 가르치는 과정이 이를 잘 말해준다. 바로 이것이 '매트릭스'의 보편성이다.
'매트릭스' 2편은 깨달음을 얻은 네오가 노예 상태로 전락한 인류를 구원하는 도정을 그렸다. 더욱 강력해진 적들을 물리치는 '공생애' 과정 또는 각성한 네오가 중생을 구하는 과정을 시속 3200㎞로 하늘을 나는 장면 등 1,000컷에 달하는 특수효과에 그 위용을 담았다. 첨단과 보편, 성과 속, 기독교와 불교의 두 날개를 쉬지 않고 흔들며 '매트릭스'는 관객을 마니아로 만든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매트릭스 2-리로디드 ' 리뷰
가상 세계 ‘매트릭스’의 요원과 첫 대결을 벌인 네오(키아누 리브스)는이렇게 말한다. “업그레이드 됐군.” 전편이 나온 지 4년 만에 관객에게선을 보이는 ‘매트릭스 2_리로디드’(Matrix 2_Reloaded)는 볼거리는 업그레이드 됐지만 참신함과 철학은 허술해 졌다. 속편답다.
네오는 이제 스스로를 구세주로 여기는 것은 물론 ‘와호장룡’의 저오룬파처럼 한 손으로 적을 상대하고(무술감독 위안허핑의 원화평의 입김이다), 구름 위를 날며 즐길 정도가 됐다. 인간 저항군의 요새 시온이 기계 전투 함대 센티넬의 공격을 받자, 매트릭스 심장부로 돌격한다는 게 속편의기본 줄거리.
전편에서 ‘X_파일’의 멀더와 스컬리를 연상시키던 네오와 트리니티는 2편에서는 뜨거운 연인 사이가 되며 이 관계는 예언자 오라클마저 프로그래밍하는 매트릭스를 파괴할 유일한 무기가 된다.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의 연인이자 시온 함대의 파일럿 니오베(제이다핀켓 스미스), 키메이커를 감시하는 백색 머리의 트윈스(닐, 에드리언 레이먼트), 키메이커의 소재를 알려주는 대가로 뜨거운 키스를 요구하는 정보 거간꾼의 아내 페르세포네(모니카 벨루치), ‘스타워즈’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평의회 등이 눈요기가 될 만하다. 디지털 세계의 열쇠를 쥔 키메이커가 열쇠공이라는 허를 찌르는 발상도 입맛을 돋운다.
그러나 “믿음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모피어스의 연설은 ‘SF 버전 간증’같고,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인과론의 설명은 철학이 바닥을드러내는가 싶기도 하다. 11월 3편이 개봉된다.
■ '매트릭스2-리로디드' 알고보기
14분의 고속도로 추격 신: 트리니티가 실제 세계로 통하는 비밀을알고 있는 ‘키메이커’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은 미 알라메다 해군기지에 240만 달러를 투입, 3.2㎞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찍었다.
에이전트 스미스 100명으로 늘어나다: 전편에서 네오를 끊임없이괴롭히던 악당 스미스 요원이 이번에는 바이러스처럼 자기 복제를 통해 100명으로 늘어났고, 네오가 이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인다. 이 장면을 위해키아누 리브스는 스턴트맨 12명과 27일 간 촬영했다.
버추얼 시네마토그래피의 묘미: ‘매트릭스’의 상징적 화면으로꼽히는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 벽을 타고 총을 쏘는 장면은 ‘불릿타임’이라는 촬영 기술을 통해 완성됐다. 이번에는 ‘버추얼 시네마토그래피’ 기법을 통해 인물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어떤 것이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이고, 어느 부분이 컴퓨터로 만들어낸 것인지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COOL에서 HOT으로: 전편 네오와 트리니티는 ‘쿨 앤 칙’으로 표현되는 검은 옷, 검은 안경 등 미니멀 패션은 물론 두 사람의 심리 역시 비교적 ‘쿨’하게 그려졌다. 2편에서는 두 사람의 패션은 그대로지만 감정은 더 뜨거워졌다. 더욱이 모피어스의 옛연인 니오베까지 나온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