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화성(火星)으로 간다고 했다. 친구들은 "네 아버진 죽었다"고 말하지만 소희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부쳤다. 아버지는 역시 화성에 있었다. 아버지는 "승재는 착한, 괜찮은 아이니까 그 오빠랑 친하게 지내라"는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답장에 적어 보냈다.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초등학교 때의 인연으로 시작해 성인이 돼서도 소희를 잊지 못하는 시골 총각 승재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죽고, 서울 고모 집으로 간 소희가 승재가 사는 마을에 나타난 것은 소희가 대학을 마칠 무렵. 등록금을 대주지 않겠다는 고모에게서 돈을 훔쳐 시골로 도망쳐 온 소희와 승재는 애틋한 하룻밤의 기억을 간직한다. 그러나 시골 우체부와 서울 대기업 여직원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더욱이 소희는 회사 상사의 청혼까지 받은 상태였으니까.
시골 총각과 서울 처녀의 이루지 못할 사랑 이야기는 수몰로 모든 것을 기억 속에 묻어야 하는 마을 풍경과 교차하면서 애틋한 심상을 만들어낸다.
생생한 캐릭터는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활짝 웃어도 연민이 느껴지는 신하균의 미소는 멜로 영화 주연이 당연히 그래야 할, 아련한 감정을 부추기는 데 소홀함이 없다. 더욱이 취직한 소희를 찾아갔다가 돌아가라는 말에 "내가… 사실은… 하루 종일 밥을 못 먹어서 배가 고팠어…"라며 눈자위가 벌개져서 엉뚱한 말을 주절주절 뱉어내는 대목에서는 그의 눈물이라도 훔쳐 주고 싶은 심정이다. '와니와 준하'에서 연기력이 부쩍 좋아진 김희선도 이제는 영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는 데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승재의 말썽꾸러기 동생, 승재를 좋아하는 동네 약사, 어릴 적 화성에서 온 편지 사건을 함께 조작한 우체국장 등 영화의 주변부 인물마저도 정감 있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왜 이리 허전할까. 풍경 엽서 같은 풍광과 동화 속 주인공이 결합한 영화는 어딘지 감동을 주기에는 힘이 달려 보인다. 감독 김정권, 시나리오 장진 커플은 전작 '동감'에 이어 '화성…'에서도 '죽음'을 꽤나 중요한 모티프로 설정했다. 워터볼을 찾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든 승재에게 죽은 소희 아버지가 공을 건네 주는 대목이나 판타지처럼 처리한 소희 할머니의 죽음, 마지막의 또 다른 중요한 죽음 역시 꽤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죽음을 다루는 이런 세련된 방식은 오히려 '죽음 갖고 장난친다'는 비난을 들을 만큼 진지함이 결여됐다. 죽음에 '눈물'이 없으니, 절절한 사랑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감각적 소재는 그저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겉돌 뿐이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영화의 결정적 패착이라 할 만하다.
신하균의 연기력은 '지구를 지켜라'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짧게 깎은 머리와 순박한 미소, 그리고 엉뚱함…. 그러나 이것만으로 또 다시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는 무리일 듯하다. 이미지 변신을 생각할 때가 아닐까. 15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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