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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美 아전인수식 논공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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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美 아전인수식 논공행상

입력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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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정변이나 전쟁을 치르고 나면 그 공을 논하고 상을 내리는 관례가 있어 왔다. 이번 이라크 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승전국 미국은 요즘 45개 연합국에 대한 논공행상을 하느라고 분주하다.국내의 거센 정치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전투병력을 파견한 영국과 호주가 단연 일등 공헌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그리고 파병 규모는 작지만 일찍부터 미국 지지를 선언하면서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 바람잡이 역할을 했던 폴란드, 그리고 영국과 더불어 유엔 안보리 등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입장을 같이해 온 스페인도 일등 공신으로 대접 받고 있다.

이등 공헌국가 수는 훨씬 많다.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연합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한 아랍 국가들, 이태리, 덴마크, 포르투갈처럼 나토 회원국으로서 기지 및 경유지를 허용한 나라들, 그리고 비전투 병력의 파병과 전후복구 지원을 약속한 한국, 필리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 이지스함을 인도양에 파견, 미국의 정찰 활동을 도와주었던 일본도 이등 공헌국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 등 음성적으로 미국을 지원했던 10여개 아랍국가와 미국에 대해 지지성명을 냈던 다수의 국가들은 삼등 공헌국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의 군사행동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결정적 시기에 미국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던 터키와 사우디 아라비아 등은 비공헌 국가로 낙인이 찍혀 있으며, 시리아와 이란은 아예 살생부에 올라 있다.

상은 공에 따라 가는 법. 영국과 폴란드는 미국과 더불어 이라크를 잠정적으로 공동관리토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라크에서의 석유 및 전후복구 사업 이권까지 확보하고 있다. 호주의 하워드 총리는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가 하면 석유 개발과 이라크 복구사업에 호주 기업들의 대규모 참여도 보장받았다. 스페인 역시 골칫거리로 남아있는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을 척결하는데 있어서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등과 삼등 공헌국가에 대한 예우는 나라마다 다르다. 카타르는 사우디 소재 미 공군 기지를 통채로 물려받았고, 필리핀도 19일로 예정된 아요로 대통령의 방미가 국빈 방문으로 격상되는 동시에 전후 복구에 10만명 이상의 인력송출을 확약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어떤가. 오는 22일 방미키로 되어있는 고이즈미 총리가 크로포드 목장으로 초대받는 등 환대를 받고 있다. 그 외에 싱가포르는 자유무역지대 건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나토가입이라는 혜택을 배려받았다.

승자 독식이라는 현실정치에서 미국의 이러한 논공행상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유엔의 권능을 무시하고 동맹과 우방국들을 공헌여부에 따라 차등화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패권국의 지도력과 아량이 결여된 아전인수식 논공행상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자체에 대한 국제적 정통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논공행상은 유럽과 중동의 지역질서에 적신호를 예고해주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을 배제한 새로운 유럽의 구상이나,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집트를 제외시킨 중동질서의 재 편성은 이 두 지역의 전략적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공정성 문제도 제기된다. 미 중부군 사령부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영국, 호주, 폴란드, 스페인 다음으로 다섯번째 주요 공로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아직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방미의 의전 수준,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에 대한 정책 조율상 애로, 그리고 전후복구 사업에 대한 참여와 역할에 대한 불투명성 등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태도를 지켜 볼 일이다.

문 정 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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