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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집단보다 개인… "아파서 결근" 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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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집단보다 개인… "아파서 결근" 흔해

입력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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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계획과 예정에 따라 진행되는 독일인들의 일상이 갑자기 중단되거나 변경되는 때가 있다. 아플 때다. 오래 전부터 예정하고 계획했던 일정이라도 담당자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곧 취소되고 중단된다. 한 학기 전부터 공고되었던 강연, 일년 여 동안 준비되었던 콘서트가 취소되고 몇 년 만에 안식년을 맞은 교수의 해외방문도 없던 일이 된다. 교통사고나 무언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고 짐작했던 것이 나중에 알고 보면 조깅을 하다 발목을 삐끗했거나 감기에 걸렸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곤 한다.우리에겐 변명으로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가벼운 감기나 두통, 발목 부상 따위의 이유들로 학생들이 학교를 결석하고 담당직원이 결근하며 예정된 강연이나 일정이 취소되는 일을 독일에선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갑자기 취소 또는 변경된 일정 때문에 헛걸음을 하게 된 사람들도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관계자가 몸이 아팠기 때문이라고 하면 독일인들은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독일인들에게 다른 모든 일들에 앞서 고려되어야 하는 우선 순위에 있는 것이다.

개인의 육체적 사정이 공식적 일정과 작업, 의무들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개인의 육체가 그의 개체성을 구성하는 출발점임을 사회 전체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의 육체를 통해 타인과 경계를 이루며 자신의 육체를 타인에게 침해받지 않고 독점적으로 소유함으로써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체의 자유가 모든 민주주의 헌법의 근본 원리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엔 개인 신체의 불가침성과 자신의 신체를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운용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

독일은 이 두 가지 원리가 삭막하리만치 철저히 지켜지는 사회다. 지나가는 아이가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지팡이를 짚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내리려는 노인을 허락 없이 부축해 주려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의도가 무엇이든 허락 없이 타인의 육체를 건드림으로써 그 개인의 개체성을 침해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독일과는 반대로 집단의 일정이 개인적 사정 때문에 변경되거나 중단되는 걸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개인을 희생하면서 집단에 기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의 육체는 집단이라는 전체가 움직여 나가는 데 기여해야 할 하나의 부속품이자 그 집단의 공유재산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몸이 아파 어쩔 수 없이 결근해야 할 직장인도 집단의 재산인 자신의 육체를 사유화함으로써 집단에 손실을 끼치고 빚을 지게 됐다는 자책감을 감당해야만 한다. 지금 한국은 둘 중 어디에 더 가까운지.

김 남 시 독일·훔볼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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