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간의 표류 끝에 출범한 제2기 방송위원회가 난항을 겪고 있다. 일부 위원의 자격을 문제 삼아온 방송위 노조는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부위원장 자리를 놓고 방송위원간에 정파적인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방송위에서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독립성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방송위원 9명의 배경을 보면 지상파방송 출신 4명(정당 출신 1명 포함), 교수 1명, 신문사 출신 1명, 광고업계 출신 1명, 시민단체 1명, 법조인 1명 등이다. 직·간접적으로 정부나 정당 입장을 반영하고 방송사와 광고주 이해를 대변할 이들이 적어도 6명이다. 방송위의 독립성 측면에서 점수를 매기면 30점밖에 안된다. 줄곧 요구된 뉴미디어 및 방송기술 전문가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상식과 원칙이 무시되었고 국민 앞에 설명하기 부끄러운 방송계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훼손된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특히 한나라당이 방송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혈안이 됐던 것이 문제다. 한나라당은 방송법 개정이라는 '정치적 협박'을 가하며 상임위원 몫을 2명으로 늘렸다. 이제는 부위원장 자리를 놓고 똑같은 '협박'을 진행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또 대선후보의 특보를 지낸 정당인을 방송위원에 추천하고 부위원장에 앉히려고 하는데, 얼마 전 서동구씨의 KBS 사장 임명 때 똑같은 경력을 문제 삼아 정치적 중립성 운운하며 극구 반대했던 것과 모순된 태도다. 그뿐 아니라 한나라당은 방송위원 추천 3명을 모두 지상파방송 3사 출신으로 채웠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지상파를 정치적으로 간섭하기 위한 교두보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그 결과 방송위는 방송업계의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방송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4명이 지상파 출신이고 1명이 광고계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성한 방송위가 방송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대립적인 방송사업자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과연 독립적일 수 있겠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방송 현안의 결정 과정에서 해당 위원들이 제척사유에 해당되는지를 따지고, 방송정책결정 과정에서 방송위원의 입장이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당면한 EBS 후임 사장 임명, KBS 이사진과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진 추천과 관련해서도 방송위에 정치권 입김이 작용할 우려가 크다. 인선에 앞서 공개적인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투명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방송위원 등의 선임에 공개적인 추천 절차를 도입하도록 반드시 방송법을 고쳐야 한다. 정치권의 나눠먹기 추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방송위원의 자격 요건이나 추천 방식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임기 만료된 방송위원을 전부가 아닌 일부만 교체하여 위원회 기능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대통령이 제2기 방송위원에게 임명장까지 준 마당에 되돌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이 방송위에 더 이상의 정략적인 개입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야말로 위원회를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새 방송위원들도 자신을 추천한 정파적 이해에 매달리거나 정당이나 방송사의 대리인 노릇에 그치지 말고 방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방송위 위상 강화와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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