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차를 마시며 이 그림을 다시 보니 평소에는 거문고 타는 선비에 쏠리던 눈길이 아이 쪽에 머문다. 달빛을 바라보며 거문고 타는 선비, 달빛을 받아 더 조용한 밤 풍경. 그림 속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거문고 소리 여백을 타고 물 끓이는 소리도 들리고, 슬쩍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도 들릴 것 같다.시중드는 아이에게 다구(茶具)를 들리고 거문고 챙겨 달 밤나들이에 나선 이 사람의 여유는 그대로 거문고 음악이 되어 들리는 듯한 이 그림. 이제 조금 있으면 아이가 달이는 차 향기가 조용히 스며들 것이고, 아이는 선비의 거문고 연주의 기미를 살펴 차 올릴 때를 스스로 알고, 빈 찻잔을 말없이 채울 것이다. 이 그림 속에는 이렇게 고아(古雅)한 풍류가 흐른다.
이 그림이 그려진 16세기말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은 거문고로 '영산회상'이나 '여민락' '보허사' 같은 곡을 배워 익혀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어울려 즐겼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거문고를 친구삼아 한적(閑寂)함을 달래고, 거문고의 조촐한 '흥'을 빌어 외로움과 번민을 노래했다. '시서금주(詩書琴酒)'로 대표되는 여러 풍류 중에서 '마음의 번민을 씻어주는 데 거문고보다 나은 것이 없더라'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음악 편지를 비롯, 선비들이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거문고를 어루만진 일상의 기록은 수없이 많다.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림 속의 선비는 차를 곁에 두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노동(魯同)은 '일곱 잔의 차를 마시며'에서 "첫째 잔은 목구멍과 입술 적시고/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 씻어주네"라고 읊었는데 거문고를 연주하며 차를 기다리는 그림 속 선비는 이제 어지간한 일상의 번민이나 외로움쯤은 말끔히 씻어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차를 즐긴 다산(茶山) 선생의 '차 마시기 좋은 때'에는 '밝은 달이 시냇가에 떠 있을 때' 가 들어있다. '걸명소'(乞茗疏)라는 글에 적힌 이 글은 차 좋아하는 사람들마다 공감하는 얘기인데 막상 이경윤의 '월하탄금도'를 보니 그림 속의 선비도 밝은 달이 시냇가에 뜬 달을 아꼈음을 알겠고, 때마침 음력 4월 보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거문고 음악 준비해 '월하탄금도'의 주인공처럼 즐겨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송 혜 진 숙명여대 전통문화 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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