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담(58·사진)씨가 첫 소설집 '깃발'(창작과비평사 발행)을 출간했다. 단편 '깃발'로 등단한 지 15년 만이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으로 큰 화제가 된 소설로 창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첫 소설집을 내기까지 남다른 시간이 걸렸다.그 동안 그가 발표한 작품은 모두 5·18 체험에 묶여 있다. 출발부터 그랬다. 표제작 '깃발'은 1980년 5월 피의 날들의 기록이다. 작가가 보기에 그날의 주인공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었다. 항쟁 마지막 날 도청에 남았다가 죽은 노동자 형자의 목소리는 그날 그 사람들 전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이 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 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가를… 그것은 곧 너희들의 힘이 될 거야."
그것은 작가에게 힘이 되었다. '오월 광주'가 삶을 버티게 하고 글을 쓰게 했다. 작가는 기억을 소설로 쓰지만, 그가 적는 것은 기억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역사를 쓴다. '문 밖에서'와 '김치를 담그며'는 광주 항쟁을 개인적 삶과 겹쳐 놓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문 밖에서'에서 영신은 항쟁 중 죽은 임산부의 얘기를 듣고 자신이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갖게 된 사실에 죄의식을 갖는다. '김치를 담그며'에서 희영은 딸과 함께 김치를 담그면서 죽은 친구 수연을 떠올린다. 김치를 담그는 손 맛이 여간 맛깔스럽지 않았으며 단단한 자태가 조금도 닳아지지 않을 것 같은 투사였던 그가 어느날 조울증으로 투신자살한다. 작가가 쓰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맡겨진 몫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빨리 또 쉽게 역사에 관대해질 무렵 홍씨는 '광주'와 '오월'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준다.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여전한 아픔을 새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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