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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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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취재에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은 날씨입니다. 도움이 되는 날씨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악천후는 큰 타격을 줍니다. 특히 비오는 날이 그렇습니다. 완전히 공치는날입니다. 빗 속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바로 돈을 버리는 행위니까요. 그렇지만 월급쟁이에게 공치는 날은 조금 다른 뉘앙스로 다가옵니다.쉬는 날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백두대간의 서쪽 계곡을 취재하려고 나섰습니다.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두타산의 무릉계곡, 울진의 불영계곡 등 백두대간의 동쪽 계곡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서쪽으로는 알려진 계곡이 많지 않습니다. 동쪽 계곡이가파르고 역동적이라면, 서쪽 계곡은 완만하고 깊습니다. 대부분 10㎞가넘습니다.

중봉계곡을 선택했습니다. 행정구역상 삼척시 하장면에 속합니다. 흔히 바닷가로 인식되는 삼척. 그 곳에서 만나는 첩첩산중이라….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호기심에 찬물을 부었습니다. 아니 진짜 찬물을 부었습니다. 한 두 방울 내리던 빗줄기가 계곡 입구에 도착하면서 굵어졌습니다. 몇번의 경험으로 압니다. 애를 써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일에 대한 마음을비워야 합니다. 카메라 배낭을 비우고 대신 도시락과 소주 한 병을 넣었습니다. 우비를 입고 우산까지 든 채 계곡에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일하는것이 아니라 쉬는 것입니다.

중봉계곡은 깊었습니다. 8㎞ 정도까지만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습니다.

비를 피할만한 원두막이 있어 도시락을 까먹고 소주도 한 잔 마셨습니다.

평일인데다 비까지 오는 계곡, 당연히 혼자였습니다. 흥얼흥얼 노래도 불러보고, 어차피 젖은 몸, 계곡물을 첨벙첨벙 건너기도 했습니다. 굵은 빗줄기에도 계곡의 물은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물에 씻긴 신록은 얼마나 맑은지….

이튿날 속리산의 동쪽 계곡을 찾았습니다. 화양구곡 등 속리산 서쪽 계곡은 유명하지만 용추, 쌍용계곡 등 동쪽 계곡은 인근 주민에게만 유명합니다. 그러나 모양새는 만만치 않습니다. 마침 날씨는 화창하게 개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계곡을 뛰다시피 취재를 했습니다. 이쯤이면 됐다 싶어계곡물에 땀을 식혔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데 조금은 엽기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조금 쏟아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

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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