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한 부산항의 마비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정부가 10년 장기계획으로 추진키로 한 '동북아 허브(Hub)항' 구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번 파업을 통해 낙후된 국내 물류산업의 실체가 드러나고, 외국 선사들이 이탈조짐을 보이면서 '세계 3위 컨테이너항'으로서의 부산항 지위를 중국 상하이에 내어 줄 상황에 몰리고 있다. 재계는 이번 사태를 통해 조직화한 화물노조가 앞으로도 자주 파업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항만 마비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13일 관련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파업사태로 부산항의 경쟁력이 크게 하락, 지난 2000년부터 지켜온 '세계 3위' 자리를 올 상반기 중 상하이에 빼앗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부산항은 지난해 945만TEU(20피트 컨테이너)의 화물을 처리해 상하이항(860만TEU)을 누르고 3위를 지켰으나, 올들어 경기침체와 파업의 영향으로 처리 화물 증가율이 제자리 수준에 머물고 있는 반면 상하이의 처리화물 증가율은 38.7%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부산항이 세계3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부산을 거쳐 상하이나 고베 등으로 재수송되는 환적화물 비중이 41%에 달하기 때문인데, 이는 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고베를 이용하던 외국 선사들이 대거 부산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물처리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외국 선사들은 일단 문제가 생겨 떠난 항구는 다시 찾지 않는다"며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부산이 고베의 전철을 밟아 영원히 2류 항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파업으로 기업 물류비용이 일본의 두 배에 달하는 후진적 물류시스템이 재부각된 것도 '동북아 물류중심' 계획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로 전경련과 무협 등 경제5단체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낙후된 물류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을 정부에 요구했다.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01년 현재 국내 기업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은 11.1%인데 이는 일본(5.45%)에 비해서는 두 배이며, 미국(9.17%)보다는 30% 가량 높은 수준이다. 또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에도 불구, 건설교통부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 해양수산부 등 서로 다른 6개 부처가 각각 다른 물류업무를 관장하는 바람에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0∼12%에 달하는 돈이 물류비에 투입되고 있다. 이밖에도 철도(2%)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도로(92%)의 수송분담비율도 화물연대의 부분적인 파업이 전국에 걸쳐 물류대란으로 번지는 주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물류대란은 정부가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가 2001년 1월 내놓은 '국가물류시행계획'에서 화물연대의 파업을 몰고 온 지입제 차량에 대한 제도개선 등의 조치를 발표하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건교부는 화물자동차운송사업법을 개정해 화물사업자 최저등록기준대수를 5대에서 1대로 완화하는 한편 물류시스템의 정비, 민간 물류기업에 대한 지원 등을 내놓았으나, 발표에만 그치고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