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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개발 논리에 숨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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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개발 논리에 숨 막힌다

입력
200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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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푸르름에 더해 아카시아 꽃향기가 우리의 눈과 코끝을 즐겁게 한다. 도시의 가까운 산에는 맑고 신선한 공기에 주린 도시민들이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넘쳐 난다. 마치 도시 한복판을 옮겨 놓은 것처럼 북적대는 주말의 산과 들, 그리고 바다는 자연과 친화하며 더불어 지내려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눈을 돌려 허옇게 파헤쳐진 백두대간과 간척지로 메워진 바다를 바라보면 자연 속의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맞서며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이 묻어난다.이제 도시민의 숨구멍으로 남아있는 손바닥만한 도시 언저리의 산과 숲들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이미 도시 주변의 산은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집들로 가득하고 산 정상은 주변의 고층아파트에 가려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다. 산은 있으되 나무숲은 간데 없고 산은 거기 있으되 조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언제나 나를 맑은 가슴으로 반기는 도심 속의 우면산도 그 남부순환도로변 자락이 올 8월이면 개발행위 허가제한지역에서 해제되어 뭉뚝 잘려나갈 운명이라고 한다.

이 시간에도 개발과 경제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마구 변경하는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골프를 친 며칠 후 정부는 골프장과 스키장의 총량규제 완화를 발표했고, 아파트값을 잡기 위한 신도시 건설계획도 내 놓았다. 그 외에도 수도권내 공장설립 조건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경제자유구역법의 특례조항, 대기오염이 우려되는 경유 승용차 시판계획, 생태의 보고인 갯벌을 잠식한 새만금과 시화호 간척사업 등 자연파괴를 전제하거나 자연환경 훼손이 뒤따르는 규제완화정책이 일시적인 경기부양과 경제논리에 힘입어 슬그머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 근대 산업화는 그 부수물로 따라온 자연파괴를 감수하도록 했다. 지난 시절에는 먹을 빵의 생산이 바로 우리의 생존문제였기 때문에 자연환경의 훼손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의식의 저편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지 않는가. 여전히 후진국형 개발논리가 환경정책보다 우선해야 할 경제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더 늦기 전에 자연 조건에 대한 인간의 맞섬으로 다가올 위험과 위협을 걱정해야 한다. 그 위험의 종류와 크기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한다. 자연파괴의 위험은 그 위험을 생산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얻은 사람에게 평등하게 되돌아간다는 사실도 우리 모두를 경각시킨다. 내가 던진 부메랑처럼 나와 내 이웃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도 섬뜩하다. 당장 지금 우리에게 되돌아오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들, 딸들에게, 아니면 그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질 것이라는 확실한 예언은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생산되는 부의 분배는 불평등구조를 갖지만 자연의 파괴가 가져오는 오염의 영향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다가가며, 어느 누구도 더럽혀진 물과 탁한 공기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 때 가서 자연환경을 생각하자고 말할지도 모른다. 자연보호도 좋지만 지금은 경기의 활성화가 우선이라고 우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입은 자연의 상처를 훗날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불가능하다. 산불로 민둥산이 된 강원 고성과 청계천 복원의 예를 보더라도 그렇다.

자연과 더불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하에서도 규제할 것은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 환경보호에 경제논리를 들이댄다면 살아남을 자연은 없다.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는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 자연환경, 그것은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목숨 건 삼보일배(三步一拜)의 고행으로 그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처럼 소중하다.

하 태 훈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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