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숲의 바람은 파랗다. 그 바람은 여느 숲의 바람과 달리 머리 속을 씻어내는 청량한 울림이다. 피부로 느껴지는 촉촉한 습기, 콧속을 맴도는 여린 솔향·하늘을 가린 솔잎 사이로 햇빛이 부서져 낙하하는 곳, 잡나무의 범접을 막은 채 소나무끼리 한데 모여 아름드리 풍채를 자랑하는, 강원도 깊은 산골에나 있을 법한 솔숲이 우리 가까이 서울 하늘 아래 있다.서울의 유일한 소나무 군락지
강북구 우이동길 덕성여대 정문 건너편에는 시멘트 블록으로 두른 담 너머로 20여m 높이의 소나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키재기를 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깊숙이 자리잡은 솔숲의 규모에 놀란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한바퀴 도는데 30분이나 걸렸다.
한가로운 오후 솔숲에선 산책 나온 동네 주민들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 솔잎 떨어진 바닥에 자리 펴고 누운 여유로운 모습. 가운데 공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족구하는 젊은이들이 부러워 보인다. 소나무 그늘 한 켠에서는 노인들이 바둑 삼매경에 빠져 있다.
아늑한 분위기에 젖어 자리를 잡고 앉으니 솔바람을 타고 온, 봄빛보다 노란 송홧가루가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 앉는다. 강북구에 따르면 우이동 산 59의1 일대 솔숲에는 1만573평의 대지에 수령 100년 가량의 소나무 1,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인근 우이동, 수유동 주민들이 가벼운 나들이, 운동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서울 인근 태릉, 동구릉, 서오능 등 왕릉 주변에 소나무 숲이 있지만 우이동처럼 한정된 공간에 소나무로만 군락지어진 숲은 찾기 힘들다.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전영우 교수는 "솔숲은 강원, 경북, 충청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는 이곳이 유일하다"며 "근대화 시기 땔감으로 많은 숲이 훼손됐는데 100년 가량 된 소나무가 군락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솔밭공원 조성
이곳에 수년에 걸쳐 솔밭공원 조성을 준비해 왔던 강북구는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소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면서 일부 공간에 놀이마당, 산책로, 생태연못 등을 만들어 강북구의 대표적인 문화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사유지였던 솔숲은 이제껏 제대로 관리된 적 없이 방치돼 왔다. 땅 주인들은 대로변인 이곳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임야에서 대지로 형질변경해 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1980년대 중반, 한창 개발 바람이 불 때에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농약, 기름을 주입해 고사시키려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유지라 어떤 보존대책도 취하지 못하던 구는 우여곡절 끝에 1996년 10월 이곳을 공원용지로 지정했고, 이후 총 사업비 158억원을 들여 토지 보상을 거쳐 올 11월 완공을 목표로 공원 조성에 들어갔다.
계획에 따르면 솔밭공원 한가운데 공터에 야외무대를 갖춘 예술마당이 조성되고 주민 체육공간으로 배드민턴장 6면이 들어선다. 생태학습장으로 이용될 연못과 어린이놀이터도 만들어진다. 주민들은 솔숲을 따라 난 황토 포장 산책로를 맨발로 걸으며 흙과 솔잎의 감촉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강북구는 우이동길 가로변을 개방, 주민 접근을 쉽게 했고 인근 가로수 25그루를 큰 소나무로 바꿔 솔밭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작년 11월에는 육림의 날을 기념, 주민과 구 직원들이 소나무에 막걸리를 주었다. 노송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전통을 재연한 것이다. 막걸리는 단백질 아미노산 유기산 미네랄을 다량 함유해 추운 겨울동안 소나무의 생육을 돕는데 효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북구 관계자는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정서를 상징하는 나무로 곧은 풍채에서 푸른 기상을 엿볼 수 있다"며 "솔숲을 잘 보존해 시민들의 마음을 살찌울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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