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핵 문제 대처와 관련된 발언의 강도와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노 대통령은 특별기 기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는 "북한 핵을 제거해야 한다는데 한미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고 뉴욕 도착 후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는 "(북한이) 이미 갖고 있는 핵 물질은 어떤 것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이 지금까지 '북한 핵 불인정''북한 핵 불용'등의 표현을 써 왔던 점을 감안하면 '제거''폐기' 등의 강경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상당한 변화다. 제거라는 표현은 북한의 핵 무기, 또는 핵 물질 보유를 사실상 전제로 한 것이다.이 같은 변화를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우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자신의 표현을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 접근시킴으로써 사전 정지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담의 성공을 위해 부시 대통령과 코드를 맞춰 가겠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에서 "미국 조야에 우리의 원칙에 대한 의구심이 아직 남아 있으나 이번에 이런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할 것"이라고 말해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했다.
노 대통령의 변화는 방미 이전부터 "욕심부리지 않겠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합의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 온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 대통령이 기대치를 낮추고 있는 것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민감한 대목을 섣불리 건드리기 보다는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상간 신뢰를 구축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표현상의 변화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양국 정책 기조의 실질적 변화로 연결될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미 양국은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데에는 의견 일치를 보고 있으나 평화적 해결의 범주에 경제 제재나 기타 비군사적 압박 수단을 포함할 지를 놓고는 시각차가 있다. 북한 핵 문제 관련 공동성명 문안을 둘러싼 실무협상 과정이 막판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는 관측도 무성하다.
노 대통령은 특히 방미 직전인 9일 워싱턴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한반도 상황은 미국의 '선제공격 독트린'을 적용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핵 및 테러 정책에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것으로 논쟁의 대상이 될 소지가 있다.
더욱이 북한의 12일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무력화 선언은 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공산마저 있다. 북한의 대미 압박카드가 오히려 미 행정부 내 강성 분위기를 조장, 핵 문제에 대한 남한의 역할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한미정상회담은 성공을 담보할 수 없는 좋지 않은 여건에서 열리게 된다는 평가다.
/뉴욕=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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