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만성적자 기업이던 닛산(日産)자동차가 화려하게 재기했다.닛산은 최근 지난 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에 6조 8,500억엔의 매출과 4,950억엔의 순이익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닛산은 3년 연속 사상 최고 순이익을 기록하며 무차입 경영을 달성하게 됐다. 순이익 기준으로는 혼다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이다.
닛산의 경이적인 부활은 프랑스 르노사에서 파견된 카를로스 곤(49)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공이라는 데 사내외에 이견이 없다. 2조 1,000억엔의 부채와 연간 1,000억엔의 이자부담에 시달리던 닛산은 1999년 르노와의 자본 제휴로 르노가 최대 주주가 되면서 당시 르노 부사장이던 곤을 영입했다.
"미스터 코스트 커터(Mr. Cost Cutter)"라는 별명대로 구조조정 전문가로 통하던 그는 5년내 무차입경영 달성을 내세우는 '닛산 재생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10년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 경제상황과 폐쇄적인 일본의 기업풍토에서 외국인 용병사장의 이 같은 계획은 당시 모두에게 무모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는 "흑자를 내지 못하면 내가 물러나겠다"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5개 공장을 폐쇄하고 2만 1,000명의 인원을 삭감했으며 계열사 거래를 철폐했다. 생산코스트 다운을 위해 경자동차 부문에서 스즈키와, 전기자동차 부문에서 도요타와 제휴하는 등 일본의 경영자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거침없이 해치웠다. 본사 사옥 매각, 계열사 양도, 은행 상호 보유주 처분 등을 통한 자금조달도 화제를 불렀다.
아침 7시에 출근해 회사 곳곳을 돌아보고 밤 11시에 퇴근하는 근무행태로 '세븐 일레븐'이란 별명을 얻었다. 기술력은 탁월한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던 닛산 사원들은 "회사가 문제이지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한 곤 사장의 대답은 "닛산의 경쟁자는 도요타도 혼다도 아니다. 닛산 자신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기업들이 기본급 동결을 유지한 올해 춘투에서 "회사가 살아난 것은 사원들의 공"이라며 가장 먼저 기본급 1,000엔 인상에 합의해주기도 했다.
사실 그의 기업재건 방식은 부진한 다른 일본 기업들이 내걸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일본 기업들이 재건책을 발표하고도 은행의 채권포기나 정부의 지원을 기다리며 꾸물대는 것과는 달리 그는 바로 실천한다는 점이 결정적 차이다. 도쿄(東京)신문은 사설에서 "비전을 결정하면 즉시 실행하는 '곤류(流)' 스피드경영에는 배울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기업 소니는 6월 그를 사외이사로 임명할 예정이다. "동기를 부여하며 구조조정을 성공시킨 것을 겸허하게 배우고 싶다"는 게 소니측의 설명이다.
브라질에서 레바논계 부모 사이에 태어나 프랑스에서 교육 받은 그는 닛산 부활의 성공으로 2005년 임기가 끝나는 루이 슈웨처 르노 본사 CEO의 유력한 후임자로 꼽히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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