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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2> 휠라와의 첫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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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2> 휠라와의 첫 인연

입력
200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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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의 신발 브랜드는 이미 한달 전에 다른 사람이 따냈는데…"친구의 말이 망치처럼 뒷머리를 때렸다. 아쉽지만 물러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치 누군가의 주문에 걸려 끌려가듯 그 사람을 찾아 나섰다.

미국인 사업가 호머 알티스. 그는 낯선 동양인의 사업 제휴 권유를 단번에 거절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거절 당하니 섭섭하고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알티스가 나와 휠라를 이어주는 운명적인 파트너가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와 휠라의 첫 인연은 화승에서 수출담당 이사로 일하던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전을 면치 못했던 화승의 미국지사를 먹여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해낸 것이 휠라 브랜드로 신발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휠라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의 브랜드였지만, 의류만 내놓고 있었다. 미국을 오가며 휠라 티셔츠를 자주 접하다 보니 "저 브랜드로 한국에서 신발을 만들어 미국에 내다 팔면 장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탈리아 의류브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그 브랜드의 신발을 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일단 사업 구상이 서자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곧바로 신발 라이선스 확보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속담처럼 이미 누군가가 라이선스를 받아간 뒤였다. 그가 바로 알티스였다. 여차하면 이탈리아 본사까지 쫓아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던 나로서는 여기서 물러설 수가 없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주소와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의 사업 근거지인 미국의 볼티모어로 날아가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내가 하려던 사업이었는데, 당신이 먼저 라이선스를 얻었다고 들었소. 도움이 될지 모르니 잠깐 만나고 싶소."

알티스의 반응은 차가웠다. "고맙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소. 이미 첫 샘플 제작을 한국의 화승이란 회사에 하려던 참이오."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바로 화승이요." 가느다란 인연의 끈을 잡고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만남이 허락됐다.

밤 10시 볼티모어 공항에서 만난 그는 새로운 사업을 앞두고 들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불안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신발 산업의 메커니즘을 모르고 있었다. 신발 산업의 메카였던 한국이나 대만의 사정에 대해 캄캄했고, 사업을 하는 데 기본인 손익계산마저 철저하게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종자돈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는 150만 달러 정도를 마르코슈 사에서 투자 받기로 돼 있었는데, 휠라 신발 산업을 벌이기에 150만 달러는 그야말로 '코끼리 비스킷' 같은 푼돈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당시 집을 사무실로 썼던 알티스는 신발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채용하지 못해 필요한 디자인을 따로 사서 사용할 만큼 돈이 쪼들렸다.

알티스가 처음 구상했던 휠라 신발은 신발 안쪽 라이닝까지 천연가죽으로 만든 켤레 당 25달러짜리 고가 제품이었다. 컨테이너 한 대 분량 만드는 가격이 25만 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세금, 운송료 등 추가 부담과 외상거래 관행까지 생각하면 그 자본금으로는 6개월도 버티지 못한다.

답답했다. 될만한 사업을 눈 앞에 두고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아쉬움과 돈이 되는 사업권을 확보하고도 경험 부족으로 실패를 눈 앞에 둔 이방인을 쳐다봐야 하는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를 말릴 힘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씁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후로도 휠라에 대한 미련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1년 뒤 화승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구상을 하다가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 비엘라에 있는 휠라 본사를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휠라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이름없는 비즈니스맨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알티스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는 뜻밖에도 SOS 신호를 보내왔다. "빨리 볼티모어로 와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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