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물가에 살아 여름이면 귓병이 떠날 날이 없었다. 자맥질을 할 때마다 귀에 물이 들어간 탓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니 그것이 중이염이 되어, 귀에 물이 들어가거나 과로가 쌓이면 염증이 일어났다. 며칠 병원 신세를 지면 깨끗이 나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는 달랐다. 6년 여 전 까닭 모르게 중이염이 재발되어 병원에 갔는데, 잘 낫지 않았다. 수술을 하자는 권유에 놀라 병원을 바꾼 끝에 간신히 치료가 되었다. 가장 강력한 항생제 덕분이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항생제 내성이 너무 커져 웬만한 약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아 수술 얘기까지 나왔던 것이다. 그렇게 내성이 강해진 까닭을 궁금해 했더니, 해답은 간단했다. 중이염 발병 얼마 전에 받은 응급수술 때문이었다. 봉합상처를 빨리 낫게 하려고 의료진이 치료약과 함께 항생제를 많이 투여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갖가지 항생제로 절여지다시피 한 육류와 어류, 가공식품 등을 많이 먹어 오랫동안 체내에 축적된 그 성분도 간접적인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 2000년 의약분업 시작 때 여러 부작용을 걱정하면서도 적극 지지했던 데는 이런 경험을 통한 깨달음도 작용했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당시 정부가 중점 홍보한 한국인의 항생제 내성 실태였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1997년 당시 한국인의 폐렴구균에 대한 페니실린 내성률은 세계 최고인 84%였다. 체내에 항생제 성분이 너무 많이 축적돼 환자의 84%는 웬만한 항생제로는 치료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중국이 신종 폐렴 사스(SARS)에 무력한 이유도 항생제 내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의약분업 이후 한국인의 항생제 남용이 많이 줄어 내성률이 크게 낮아졌다는 기사는 그래서 눈에 확 띄는 뉴스였다. 의약분업 이후 한국인의 항생제 사용량에 대한 계량은 들쭉날쭉했다. 그러나 의약품 사용량에 대한 국제통계 자료를 활용한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의약분업은 옳은 정책이라는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약으로 먹는 것은 제쳐두더라도, 갖가지 음식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독'을 섭취하고 있는지에 생각이 미치면, 의약분업 논란에 대한 해답은 분명해진다. 좀 불편하다고 스스로 건강을 해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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