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서 여인으로, 그리고 아내 엄마 할머니의 역할을 해 나가며 여자의 몸은 일생에 거쳐 변화한다. 월경 임신 출산 폐경은 여자의 살과 근육, 뼈와 피를 끊임없이 바꾸어 놓는다. '여자는 왜?' 이런 몸의 변화를 겪어야 하는가? 의학적인 '몸'을 뛰어넘어 생물학적, 정신적, 사회학적 시각까지 곁들여 매주 화요일, 여자의 신비를 풀어본다.수명 격차의 수수께끼
누가 더 오래 사는가. 생명의 게임에서 여자는 승자(勝者)다. 우리나라 여자는 7.5년, 프랑스는 7.9년, 미국은 6.7년, 일본은 6.6년을 남자보다 오래 산다. 여성의 긴 수명은 이슬람권 몇몇 나라를 제외하곤 세계적 현상이다. 전세계 80세 이상 인구의 3분의 2는 여자다. 우리나라의 여자 장수 노인 편중현상은 상당히 심해, 100세 이상 남녀 비율은 무려 1대 12이다.
유전자 영향 - 아직은 수수께끼
남녀의 수명 격차는 XX와 XY 염색체 구성차이가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개연성 있는 주장이다. '한국의 100세인 연구'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서울대의대 생화학과 박상철 교수는 "여자의 성염색체는 XX로 두개의 X염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남자는 하나의 X염색체와 Y염색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DNA가 고장나면, 여자는 비상시 가동될 수 있는 유전자적 여유가 있는 반면, 남자는 스페어가 없어 손상을 고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남자의 유전자는 돌연변이가 더 쉽게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 서울대의대 생화학과 서정선교수는 일반적으로 장수 유전자는 대사에 관련된 것이 많다고 주장한다. 서교수는 "한의학에서 여자에게는 체온이 중요하고 남자에게는 호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만큼 남자가 대사의 리듬성에서 여성에 비해 떨어지고 스트레스에 예민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월경과 폐경도 수명 증가 요소
여성호르몬이 생체 조직의 산화현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며 동맥혈관의 유연성과 혈류량을 증가시켜 동맥경화증의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세대의대 산부인과 박기현 교수는 "폐경이 심장병과 골다공증의 위험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폐경 역시 여자가 오래 사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폐경, 즉 자연적으로 불임이 됨으로써 여자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건강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은 모성 사망율 3대 원인에 꼽힐 정도로,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심지어 출산 자체도 엄마 몸에 장기간 쌓여왔던 중금속을 포함한 환경오염물질이 배출되는 계기가 돼 수명 연장에 기여한다. 몸에 축적된 오염물질의 약 70%가 태반을 통해 빠져 나간다는 것. 수유 역시 엄마의 몸이 정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박상철 교수는 월경 덕분에 여자는 오래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포 내에서 철분 함량이 높다는 것은 유해산소가 많다는 증거. 여자는 매월 월경을 통해 정기적으로 철분을 체외로 배출하나, 남자는 배출구가 따로 없어 간이나 신장에 축적하게 된다. 실제로 남자의 헤모글로빈 농도는 여자보다 훨씬 높다.
또 박기현 교수는 "신생아를 돌보는 엄마는 태아의 울음소리(90데시벌)에 시달리게 되며, 잠을 설치게 되는데 이러한 고통이 여성에게 방어기전을 본능적으로 부여받게 해 훗날 여자가 남자에 비해 양질의 수면을 취하게 돼 스트레스 해소와 면역능력을 증강시키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성인여자가 깊은 잠을 자는 평균 수면시간은 70분인데 비해 남자는 40분 안팎이라는 것. 육아과정도 수명연장의 수단이란 뜻이다.
생활습관과 다양한 사회적 역할
미국 로이드 크로스박사는 'Why Women Live Longer than Men' 이란 책에서 다양한 사회적 역할, 종교활동, 자식을 많이 낳아 잘 키우려면 오래 살아야겠다는 모성본능, 주위와의 협력적 태도 등 여자의 독특한 행동유형이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부드럽고 유연한 성품의 여자는 남자보다 스트레스도 잘 해결한다.
상대적으로 과격하고 운동량이 많은 남자들은 각종 사고나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는 비율이 훨씬 높다. 1990년대말 미국의 한 보고서는 남자는 여자에 비해 사고, 자살, 살인의 비율이 각각 3배, 5배, 4배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했을 정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남정자 박사는 "우리나라 남자들은 간암 간경변 자동차사고 폐암 결핵 등으로 인한 사망률에서 여자보다 훨씬 높다. 또 흡연율이나 음주량이 상대적으로 높아 이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1998년 조사 결과 우리나라 20세이상 성인흡연률(인구 100명당 흡연자수)은 남 64.1%, 여 5.9%. 건강상 문제가 되는 고도 음주율(인구 100명당 1달간 21일 이상 음주자수)은 남 11.2%, 여 1.3%로 나타났다.
포천중문대의대 가정의학과 이영진교수는 약국, 보건소, 중소병의원, 한방병원 이용률도 여자가 훨씬 높다면서 남자는 병을 심각한 상태로 키운 다음에야 의사를 찾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yjsong@hk.co.kr
● 남자가 배워야할 여자의 장수비결
여전히 가정에서 큰소리치는 50∼60대 남편들이라면 빨리 깨달아야 한다. 남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70∼80대까지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다운 벗이 하나 둘 떠나는 세상은 예전처럼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장수를 원한다면 나이가 들수록 왕성해지는 여자의 사회적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든 배우고, 할 생각을 하라 : 문화센터에 가면 40∼50대 아줌마 부대로 가득 차 있다. 남자들도 힘만 쓰려 하지 말고, 이제 문화적 교양을 쌓기 위해 노력하라.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데 귀찮아 하지 말라. 쉽게 배울 수 없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퇴직 후를 대비하라 : 여자들은 함께 어울리는데 능하다. 60대이건, 70대이건 여자들은 서로 친구로 사귀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일상생활이라는 공통의 화제가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 정년퇴직 후 사회적 네트워크의 약효는 2∼3년 동안뿐이다. 일로써, 직업으로써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미리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를 따로 구성하라.
강한 정신력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아라 : 남자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여기지 말라. 체면치레일 뿐이다. 가사에 참여하고 손주를 돌보아주는 일에도 적극 참여하라. 일도 없고 돈도 없다고 비참한 인생이라고 자책하지 말라. 박상철교수는 "동네 대장처럼 지내는 100세 시아버지에 대해 며느리가 '왱왱 거리는 벌 같다'는 표현을 써 무척 인상 깊었다"면서 "삶에 용기를 갖고 집안이나 동네 일에 적극 참여하라"고 조언했다.
● 제주·오키나와 장수식단
우리나라 대표적인 장수 지역으로 꼽히는 제주도. 2001년 조사에서 100세 이상 노인 31명 가운데 30명이 여자였다.
2001년 실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세인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서울대 인류학과 전경수교수는 제주도 여자들은 신선한 채소 중심의 식단을 즐기고 있다고 보고했다. 멜순(밀나물) 상치 배추 콩잎 쑥 등 제주도의 자연환경에서 잘 제공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이 이들의 선호음식. 국을 끓이기 위한 기초 재료는 된장. 세계에서 100세 이상 노인 비율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의 건강식단 역시 저칼로리 야채중심 식단이다. 하루 평균 18종류의 음식을 먹었는데, 그 가운데 78%가 '풀'이었다는 것. 전문가들은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면 할수록 몸에 이롭다고 말한다.
돼지고기가 제주도와 오키나와에서 공통적으로 선호되는 식품이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조리법도 비슷해, 돼지고기를 구워 먹기보다는, 찌거나 삶아서 먹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돼지고기를 오래 삶는 이유를 돼지고기가 가지고 있는 좋지 못한 성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제주도 토속 음식에는 된장국에 돼지 뼈를 삶으면서 그 속에 몸이라는 해초를 넣어 만든 몸국, 마늘을 넣고 삶은 돼지고기를 도마(돔베)위에 놓고 먹는 돔베고기 등 돼지요리가 많다. 백세인 실태조사팀은 한 102세 할머니는 하루 세끼 모두 돼지고깃국을 먹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다시마 김 해초 등 해조류와 고구마도 장수식품으로 거론할 만하다. 제주도에서는 해초, 오키나와에서는 다시마가 많이 소비되고 있다. 오키나와 여자들은 콩류 식품 섭취를 통해 천연 에스트로겐 효과를 얻고 있다. 오키나와 여자들은 호르몬 대체요법을 받고 있지 않았지만, 혈액 내부 플라보노이드라 불리는 식물 에스트로겐 수치는 호르몬요법을 받는 미국여자들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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