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정치인을 뽑아내 달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어버이날 메시지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 대통령의 특징 중 하나가 '의외성'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일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의 메시지가 특정 인터넷 사이트 회원들에게 발송됐다는 점이다. 평소에 대통령의 편지는 공무원 10만 명과 청와대 홈페이지 회원 20만 명에게 이 메일로 보내는데, 이번에는 아이러브스쿨 회원 등 500만 명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 편지는 물론 정식 담화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신(私信)도 아니다. 어버이날 편지여서 특별히 발송범위를 넓히고 싶었다면 전 매체에 공개하는 게 옳다. 인터넷 이용자들과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해서 그 쪽에만 사신을 띄울 수는 없는 게 대통령이란 자리다.
정치권에서는 어버이날 메시지가 시종일관 정치적이고, '잡초'라는 표현 등이 지나치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것도 문제지만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다. 잡초냐 약초냐, 개혁 세력이냐 반개혁 세력이냐, 통일 세력이냐 반통일 세력이냐는 식의 분류는 위험하다. 그것은 독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통령의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 '잡초'는 사리사욕과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앞날을 막는 정치인,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려는 정치인,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 등이다. 해석에 따라서는 모든 반노(盧)세력에게 뒤집어 씌울 수 있는 허물이다. 대통령 주변에서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잡초'로 보고 있구나 라는 짐작도 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는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개혁의 양분법을 즐겨 사용했다. 김대중 정부는 개혁 대 반개혁 뿐 아니라 통일 대 반통일이라는 분류로 내 편과 반대 편을 구분했다. 민주, 개혁, 통일 등을 내세운 서슬 푸른 우월감으로 반대세력을 꾸짖던 사람들은 오늘 어떻게 됐나. 유감스럽게도 '잡초'로 분류돼야 할 사람이 많다.
노무현 정부라고 그런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과거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양분법으로 상대방을 매도하는 독선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 역시 잡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잡초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러니 '약초'가 되려고 노력하겠다는 겸손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나가야 한다.
벌써 노 대통령 측근 중에는 정권 출범 이전에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입건된 사람들이 있다. 노 대통령은 "나 때문에 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어렵던 시절에 같이 정치를 하기위해서는 정치자금이 필요했다"는 뜻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대통령 측근 중엔 재야에서 투쟁한 사람들이 많고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관들 중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셋집을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국민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돈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돈 많은 사람도 물론 안전하지 않다)
지난 정권을 보더라도 가난하게 출발해서 아직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손 꼽을 정도다. '유별난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곤 '집권층답게' 생활수준이 올라간 지 오래다. 반개혁, 반개혁 하고 남들을 몰아 부치는 바람에 자기들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줄 알았는데, 비리혐의로 줄줄이 구속되지 않았는가.
"나는 약초, 너는 잡초"식으로 우월감을 가질게 아니라 잡초가 무성해지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깨끗한 정치를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 해야 한다. 정치 부패의 가장 큰 원인인 정치자금 문제, 돈이 많이 드는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집권자들부터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부패하게 된다. 국민이 생각하는 독초 중의 독초는 부패한 정치인이다.
대통령의 잘못인지, 측근의 잘못인지, 양측이 코드가 맞아 함께 저지르는 잘못인지, 이 정권은 너무나 말 실수가 잦다. 잡초론도 그 중 하나다. 다 같이 잡초 밭에서 정치를 하면서 자기들만 순혈(純血)이라는 자부심은 당치도 않다. 독선적인 권력 치고 썩지않는 권력이 없다는 교훈을 새겨야 한다. 이 정권이 독초냐 약초냐는 심판은 5년 후 국민이 할 것이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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