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홍관교수의 진료실 풍경]여중 2년생의 흡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홍관교수의 진료실 풍경]여중 2년생의 흡연

입력
2003.05.12 00:00
0 0

금연클리닉에 여중 2학년 다섯 명이 한꺼번에 찾아 왔다. 소지품 검사를 했는데 한 학생이 담배를 갖고 있다가 적발되었고, 같이 담배 피던 친구들 4명이 줄줄이 걸려들어 학교에서 금연클리닉 교육수료증을 받아 오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따라온 엄마들은 자기 딸이 흡연하리라고 상상도 못했다고 이구동성이었다. "애들이 놀고 싶어도 놀 시간도 없어요.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가야지요. 학원 끝나면 10시예요. 집에 오면 10시 반인데 숙제하고 나면 12시 다 돼요. 그러니 애들이 무슨 딴 짓을 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애들은 부모보다 영악했다. 중학교에 들어와 어울려 다니던 다섯은 수업이 끝나면 노래방으로 직행해서 놀곤 했다. 워낙 규칙적으로 놀았기 때문에 부모는 그 시간이 학교 끝나는 시간인 줄 알았다. 노래방에는 선배 언니들이 있었는데 모든 면에서 앞서갔다. 이웃 중학교 오빠들도 있었고, 담배도 있었다. 학교에서 걸린 학생은 선배 언니들의 총애(?)를 먼저 받아서 1학년 때 이미 상습 흡연자가 됐다. 하루에 반 갑씩 피기 때문에 담배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가 되었다. 다른 네 명은 노래방에 가서 그때 그때 조달했다.

잘 알려진 대로 청소년들은 흡연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한 호기심, 어른처럼 보이거나 멋있어 보이고 싶은 심리 때문에, 또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흡연을 시작한다. 흡연량도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5∼10년 관찰해보면 대부분 흡연량이 증가하고, 니코틴 중독은 더 심해져 금연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학생들과 이야기한 결과 처음 걸린 학생은 금연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되었다. 나머지 4명은 이번 충격으로 금연할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똘똘 뭉쳐 다니는 친구들이 계속 비슷한 환경에 노출될 경우 다시 흡연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흡연하지 않는 새 친구들과 어울린다면 금연에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능할 것인지?

청소년 흡연 문제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흡연하는 청소년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들이 마음 붙일 곳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학교든 가정이든 오로지 공부만 요구하니, 공부에 소질없는 학생들은 결국 옆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옆길에는 컴퓨터게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따라다니기, 이성 친구 사귀기 등도 있지만 술과 담배, 본드 등 약물, 포르노 비디오, 무분별한 성관계 등 위험한 것들도 즐비하다.

쌔근쌔근 잠든 자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천사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부모에게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부모는 부모가 원하는 자식 만들기에만 매달리지 말고,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녀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 시간이 많을수록, 부모가 자녀에 대한 영향력이 높을수록, 부모가 흡연을 하지 않을수록 자녀의 흡연율은 낮았다. 가정이 위로를 주는 안식처가 된다면 옆길로 가더라도 너무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혹시 오래 가더라도 너무 멀리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