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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왜 지금 잡초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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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왜 지금 잡초론인가

입력
2003.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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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다 보니 어머니 산소에 성묘를 자주 가지 못한다. 그러나 성묘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놀라운 잡초의 생명력이다. 지난 성묘 때 깔끔하게 제초했던 무덤이 어느 새 완전히 잡초로 뒤덮여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실감하게 된다. 정치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즉 잡초 정치인일수록 군사독재, 3김 정치에 기생해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살아 남아 왔기 때문이다.노무현 대통령이 때 아닌 잡초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정치에는 개혁 발목잡기 잡초, 지역주의 잡초, 사리사욕 잡초, 집단이기주의 잡초, 안보 정략주의 잡초, 국민우롱 잡초 등 여러 유형의 잡초 정치인들이 무성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나아가 "농부는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내는데 이는 선량한 곡식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들이 할 일은 바로 농부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양면적이다. 우선 그 내용은 백번 만번 맞는 이야기로 속이 다 후련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아무리 그것이 맞는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말하기에 적합한 것인지, 또 지금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합한 시기인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여야가 국정원 인사문제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가 걸린 중차대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초당적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에서 그 같은 이야기를 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실제로 방미를 앞두고 노 대통령이 초대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초청만찬에 적지 않은 의원들이 잡초론에 반발해 불참하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했다.

궁금한 것은, 사안이 시급하다면 모를까 국민들이 잡초정치인을 뽑아내는 제초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가 아직도 1년 가까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게 노 대통령이 잡초론을 제기하고 나선 이유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잡초론은 노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차례 말해온 원칙적인 이야기로 다른 저의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원칙적인 이야기라도 어떤 말을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이는 청와대가 기본적인 상황조차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나라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스러워 진다.

그러나 내 희망사항인지 모르지만,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그런 것을 모를 정도로 정치적 판단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잡초론을 제기해야만 하는 다급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아야 옳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당의 신주류 강경파가 주장해온 개혁신당론이 잡초를 포함한 특정계파를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통합신당론에 의해 반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신당론에 힘을 보태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얼마 전 MBC 100분 토론에서 "내 맘은 뻔한 것 아니냐"는 표현을 통해 밝혔듯이 개혁신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준수하겠다고 말해온 만큼 민주당의 미래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고 지시할 형편이 아니다. 이 같은 딜레마가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메일 공개서한의 형태를 통해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 개혁신당론에 지원사격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잡초론이 나간 뒤 당외 개혁세력과 노사모 등 노 대통령 지지세력이 부산정치개혁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비슷한 움직임이 대전, 충남과 경북지역에서도 일고 있다. 제초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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