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숲에는 천남성이 한창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름이 참 독특하지요. 이 식물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첫 남성'으로 잘못 알아듣고 첫사랑 연인과 관련된 얘깃거리가 있을 것으로 지레 짐작했습니다. 물론 생김새도 궁금했구요.천남성은 그 꽃이나 열매, 잎까지도 다른 식물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독특한 생김새를 가져 처음 본 순간 '이런 식물도 있구나'라고 크게 감탄합니다. 하지만 이름이 첫 남자와 상관없는 '천남성(天南星)'이라는 사실을 알고 남몰래 즐기던 상상의 나래가 꺾이는 바람에 다소 김 빠졌던 스무 살 시절이 생각납니다.
천남성이 다시 관심을 끈 것은 독성 때문입니다. 특히 열매는 울긋불긋한 옥수수 알처럼 생겨 먹음직스러운데 독성이 아주 강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간혹 섬 지방에 가면 염소 때문에 풀이 큰 해를 입고 있는데 유독 천남성만 무성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동물도 이 풀의 독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기에 먹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방에서는 귀한 약재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같은 풀도 잘 쓰면 약이고 잘못 쓰면 독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아무튼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함부로 만지면 안됩니다. 무심히 잎을 따기만 해도 가렵고 물집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정작 재미난 것은 이 식물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천남성 꽃은 녹색빛이 돌고 모양도 모자뚜껑 같이 이상합니다. 우리가 꽃잎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이 겉 부분은 꽃차례를 싸고 있는 포(苞)이며 꽃은 그 속에 들어 있지요. 암꽃과 수꽃이 따로 말입니다.
사람은 XY염색체가 있어서 성(性)을 결정하며 은행나무 같은 일부 식물도 처음부터 암나무와 수나무가 결정돼 자랍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며 아직 어떤 방법으로 암수가 결정되는지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무궁무진하답니다.
천남성은 그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방식을 채택합니다. 식물체가 작을 때에는 자주색 꽃밥이 있는 수꽃이 주로 달리지만, 커지면 암꽃들이 모인 암꽃차례를 만들며 성을 바꿉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한번 암꽃으로 달려 열매를 잘 맺고 나면 이듬해에는 꽃을 피우지 않거나 아니면 다시 성을 전환해 수꽃만 피운다는 것이지요.
왜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체계를 가지는 것일까? 어려운 세상에 스스로 최선을 다해 적응하며 생존하기 위한 방편이지요. 식물 입장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것은 결실입니다. 식물 스스로 튼튼하고 영양상태가 좋을 때 암꽃이 돼 알차고 좋은 씨앗을 맺고, 이렇게 온 힘을 다하여 후손을 만들어 내고 나면 스스로 부실해지니 수꽃이 되어 다시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옛 어른들이 호박을 심을 때 호박 구덩이에 뒷간에서 삭은 인분을 넉넉히 함께 묻으며 암꽃이 많이 피어 호박이 많이 달리도록 하셨던 것이 무지가 아니라 놀라운 과학이라는 것을 이제 잘 알 것 같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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