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시청자들은 미국판 '악동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마추어 가수 선발대회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에 푹 빠져있다. 폭스TV가 영국 TV쇼인 '팝 아이돌(Pop Idol)'을 본떠 지난해 선보인 이 프로그램은 방송 초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더니 최근 시청률 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4월 마지막 주 닐슨의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화·수요일 이틀간 방송된 이 프로그램 시청률이 각각 11.9%(3위)와 11%(5위)로 나타났다. 이틀 방송 분 시청률을 합치면 22.9%로, 전체 1위인 CBS의 법의학 드라마 'CSI'(12.4%)를 훨씬 웃돈다. 미국인 5명 가운데 1명 꼴로 이 쇼를 시청했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메이저 방송사이면서도 성인 애니메이션인 '심슨 가족(The Simpsons)' 외에는 변변한 히트작이 없던 폭스사 간부들은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일 것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방송 초 평론가들과 네티즌들로부터 적잖은 비판을 받았고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프로그램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한국 방송모니터 단체들은 아마도 이 쇼를 대표적인 '저질, 상업적, 선정' 프로그램에 포함시킬 것이다. 20대 초반의 꽃 같은 미남 미녀 가수 지망생들을 불러모아 온갖 테스트를 하고, 심판관 가운데 한 명은 재능이 모자란다 싶은 출연자에게 인신공격에 가까운 신랄한 비난을 퍼붓는다. 공격을 당한 출연자들은 그 자리에서 펑펑 울기도 하고 심판관에게 싸움을 걸기도 하는데 이 과정 역시 그대로 방송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제작 과정과 진행방식, 시청자 참여기회 등 측면에서 보면 '시청자 우선'의 접근을 시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미국 전역을 돌며 1차로 100명의 후보를 뽑는 단계부터 붐을 일으킨 제작진은 오디션을 거쳐 50명의 2라운드 후보를 결정하고 시청자 투표를 통해 매회 2명의 결승 진출자를 가리는 등 토너먼트 방식으로 흥미를 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후보를 지원하는 팬 클럽과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잘못된 판정과 독선적 심판관을 비난하는 안티 사이트가 등장해 상호 작용하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배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지난해 최종 우승자로 선발된 여성은 곧바로 가수로 데뷔해 인기를 끌고 있다. 프로그램 로고가 들어간 각종 상품까지 등장해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방송과 대중 문화상품의 결합이라는 부가 수익까지 챙기고 있는 셈이다.
후발 방송사인 폭스의 분발은 기존 3대 방송사에도 큰 자극이 되고 있다. CBS는 최근 이 프로그램을 의식해 왕년의 인기 프로인 '스타 서치(Star Search)'를 부활시켰다. 다른 방송사도 리얼리티를 강화한 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고 있지만 아직 '아이돌' 신드롬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상연·미국 조지아대 저널리즘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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