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5월12일 시인 박용철이 34세로 작고했다. 박용철의 호는 용아(龍兒)다. 지금은 광주광역시에 편입된 전남 광산 출신. 박용철은 뛰어난 시인이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뛰어난 평론가였고 뛰어난 조직자였다. '효과주의 비평 논강' '조선 문학의 과소 평가' '시적 변용에 대하여' 등의 평론을 통해서 그는 계급주의와 민족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며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했다. 박용철이 서유럽 문학의 강한 영향 아래서 1930년에 창간한 잡지 '시문학(詩文學)'은 그 해 10월의 통권 3호로 종간됐지만, 김영랑·정지용·신석정 등 뛰어난 재능을 끌어 모아 순수 문학의 둥지 역할을 했다. 그 뒤에 발간한 '문예월간' '문학' 등의 잡지도 성격이 비슷했다. 그 점에서 박용철은 그보다 40년쯤 뒤에 태어난 평론가 김현(1942∼1990)의 진정한 선배였다.박용철의 가장 잘 알려진 시는 '떠나가는 배'다. 탈출의 의지와 욕구를 담은 이 시가 일제의 강압 정치라는 공적 맥락을 지녔는지 아니면 시인의 개인사에 얽힌 사적 맥락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두야 간다'의 '나두야'를 굳이 '나 두 야'로 떼어 씀으로써 긴장된 리듬 위에 화자의 결의를 실어놓은 것이 별나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 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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