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생이 얼마나 길 지 모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라도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면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있게 마련일 것이다. 나 역시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지만 하나같이 잊을 수 없는 일들뿐이다. 그 중 지우지 못하고 각인되어 남아 있는 일이 하나 있다.대학을 졸업하고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이란 곳에 몸담고 있을 때였다. 경북 포항에 대규모 제철단지를 조성하면서 공업용수 공급을 위한 저수댐 건설이 불가피했다. 저수댐 건설로 지금의 경주시 강동면 안계리 일대가 수몰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수몰지역내 분포하고 있는 신라시대 무덤인 폐고분(古墳)의 발굴조사가 긴급히 이뤄지게 되었다. 나는 발굴조사요원으로 현지에 파견되어 조사하고 있었다.
5월부터 시작한 발굴조사가 6월로 접어들어 무더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인부들이 작업하다 말고 한 곳으로 달려가 무언가 했더니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은 토기항아리에 천년수(千年水)가 들어있다며 너도나도 그 물을 마시겠다고 달려간 것이다.
나는 현장책임자 입장에서 나름의 결단을 내려야 할 형편이었다. 말하자면 항아리에 담긴 천년수라는 물을 마시게 해야 하느냐 아니면 버려야 하느냐 하는 결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동안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내가 먼저 마셔보고 이상이 없으면 모두에게 고루 마시도록 하겠다고 인부들과 약속하고 현장의 동요를 일단 가라 앉혔다. 그런데 막상 마시려고 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궁리 끝에 빨대로 한 모금만 마셔보기로 하고 빨대를 찾았으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근처 보리밭에서 보릿대를 꺾어오게 해서 빨대를 대신했다.
1,500여 년 전의 신라무덤에 묻혔던 토기항아리에는 맑은 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보릿대로 한 모금 빨아 입에 머금고 목구멍으로 넘기느냐 아니면 뱉어버리느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인부들이 이 광경을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드디어 눈을 감고 죽기 아니면 살겠지 하는 심정으로 넘겼다. 그러나 물맛이라고는 달리 없고 그저 미지근한 맛이었다. 내가 마시고 나서 얼마간 아무런 탈이 없기에 모두에게 원하는 대로 각자 보리빨대를 이용해 마시게 했다. 그때의 일이 33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수많은 발굴현장을 다녔지만 정말 잊지 못할 일이었다.
그 천년수를 마셔서인지 지금까지 아무런 병원신세 진일 없이 잘 살고있어 생각하면 할수록 웃음이 절로 입가에 번진다.
조 유 전 전 국립 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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