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파는 영업은 죽은 영업이죠. 뭔가 '팔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습니다."곧잘 '외판원'이라는 말로 폄하되기 쉬운 것이 영업사원의 세계.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관리직에 비해 '세일즈'가 힘들고 세련되지 못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분야 '국내 최고'로 꼽히는 3명에게 그런 편견은 발 붙일 곳이 없었다. 각기 세일즈 경력이나 입문한 계기, 전문분야 등에서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일에 임하는 자세만은 같았다. "설사 다른 회사의 물건이라도 고객이 원하는 것을 구해줍니다. 상품 이전에 먼저 '나'라는 사람을 알려야 합니다."
스스로 도전하는 'CEO 세일즈맨'
삼보컴퓨터 중부 특판팀의 전타식(36) 과장은 2001년 CJ39쇼핑에서 펜티엄3 PC를 2시간만에 40억원 어치나 팔아치운 전무후무한 판매기록의 소유자다.
입사 10년차인 전 과장은 일명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불리며 인사철만 되면 모든 부서에서 서로 데려가고 다툴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영업부문을 떠나지 않는다. 전 과장은 "물건을 파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 내가 정보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며 '영업 찬양론'을 펼친다.
그는 세일즈를 끊임없는 자기 경영의 과정으로 설명했다. 나 스스로가 최고경영자(CEO)라는 생각으로 일에 몰입한다는 것. '삼성의 텃밭'이라는 수원지역을 자원한 것도 남들이 포기하는 곳에 뛰어들어 기회를 찾으려는 사업가 기질이다. 최근엔 '나는 오늘도 CEO가 된다'는 책도 냈다.
'3,000만의 호구'가 1만명 고객의 '리더'로
"다들 저한테 '3,000만명의 호구'라고 했어요. 밥통 하나 못 팔아오면서 남한테 좋은 일만 시켜주고 다닌다고요" 대우일렉트로닉스 특판사업본부 백숙현(43) 본부장은 1986년 대우전자 입사이래 10년간 판매왕 자리를 독식하면서 100억원 어치를 판매한 세일즈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덕분에 기업체 세일즈 강사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관련 서적도 2개나 펴냈다.
그는 고객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다고 했다. 고객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절대 먼저 판매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뭐든 아쉬운 것을 도와주려는 노력이죠. 그 중 물건이 필요할 수도 있고, 그 중에 내가 파는 물건이 있을 수도 있죠." 그렇게 하나하나 신뢰와 정을 쌓아온 고객들이 1만 명이다. 그는 "내 재산목록 1호는 이 고객리스트"라며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애가 나중에 엄마의 뒤를 잇고 싶다면 물려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뢰와 성의, '손해보는 마음'이 기본
현대자동차 인천 주안지점의 윤돈기(36) 과장은 전형적인 '구식' 세일즈맨이다.
굳은살이 박혀 굽어진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은 그의 비상한 노력을 보여준다. 매달 2,400명의 고객에게 편지를 자필로 써보내면서 얻은 '훈장'이다. 그는 고객들이 "자기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번은 리모컨 키를 잃어버린 고객의 불편을 해결해주고 집에 들어왔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다시 전화를 해 짜증을 내시더군요. 워낙 친한 분이라 저도 모르게 맞받아치고 전화를 끊었는데, 듣던 아내가 '당신 예전엔 안 그랬잖아'하며 정색을 하더군요." 돌이켜 보니 작은 불편도 자신이 아니면 호소할 곳이 없는 '내 고객'이라는 생각에 크게 후회를 했다고. 이후로 항상 초심을 잊지 않고, 항상 '손해보는 마음'으로 고객을 대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가 됐다.
세일즈맨은 고객을 이끄는 CEO
"업계의 '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큰 사건"이라며 각자의 세일즈론(論)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는 이 세 사람에게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란 전쟁터의 진리는 비즈니스의 전장(戰場)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흔히 영업사원은 고객의 요구만 쫓고, 거기서 뭔가 얻어내려고만 하는 수동적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틀린 생각입니다." 정보와 시류의 중심에 서서, 고객을 먼저 이끄는 최고경영자(CEO)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숨겨진 '세일즈 비법'이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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