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 집단따돌림(왕따) 사건과 관련, 피해학생에게도 원인 제공 등 일부 책임을 물어왔던 기존 판례와 달리 대인기피증과 같은 성격적 요인을 이유로 피해학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대전고법 민사1부(김영란 부장판사)는 11일 "왕따를 당해 자퇴까지 한 만큼 피해를 배상하라"며 이모(당시 고1)군의 부모가 대전시와 가해 학생 가족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인 이군과 부모에게도 50%의 책임이 있다"는 1심 판결을 깨고 "이군의 부모에게 보호소홀로 인한 20%의 책임만 물을 수 있을 뿐, 피해자인 이군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이 사건 피고들에게 80%의 책임을 물어 1억1,6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대인기피증 등 이군의 성격이나 기질도 왕따 발생 및 학대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나 학교는 어느 조직보다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절실히 필요한 곳으로, 피해자의 성격을 이유로 책임을 묻는 것은 교육의 이념 내지 학교의 존재 이유에 비추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성격적 요인을 객관적 증거도 없이 배상액 산정에 감안하는 것은 손해배상의 법리에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판단을 피해학생이 왕따를 유발할 만한 '적극적인 가해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만으로 한정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과 잦은 전학으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군은 1998년 고교 입학 후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수술로 비음이 섞인 목소리와 머리가 크다는 이유 등으로 집단 왕따를 당하자 같은 해 8월 등교를 거부하고 99년 9월 자퇴한 뒤 소송을 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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