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뉴엘 카스텔 지음·김묵한 등 옮김 한울 발행·2만4,000원
정보 기술의 급격한 발달 등으로 지구 전반에 걸쳐 과거에 보지 못한 수많은 사회 변화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인 한국은 이런 거대한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정보화 시대의 실험실 같은 곳이다.
따라서 미지의 혼돈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되는 경제 사회 연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변화에 대한 우리의 지적 탐구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가 번역된 것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미국 UC버클리의 카스텔 교수는 '정보화 시대의 계몽주의자'로 불리는 정보사회학의 대가다. 그는 '도시와 민중'(1983년) 발간 이후 구조주의 마르크시즘적 인식론에서 벗어나 연구 대상을 정보사회 전반으로 넓히면서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열었다. 이 책은 카스텔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역작인 '정보시대' 3부 작 중 제 1권이다.
카스텔은 정보사회의 특성을 네트워크사회로 특징 짓고, 정보기술혁명을 새로운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네트워크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터넷 네트워크와는 다르다. 여기서 네트워크란 상호 연관된 결절의 집합을 말한다. 이를테면 금융네트워크에서 주식시장 같은 것은 대표적 결절이다. 네트워크 중에는 정보기술네트워크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사실 이런 네트워크는 인간 역사를 통해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기술은 전 사회와 전 세계로 네트워킹 형태를 확산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진정 전지구적인 것이 되었고 지구적 금융시장이나 생산 체제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자본가는 전자네트워크에서 얼굴 없는 집합적 자본가로 존재하며 기업도 점차 다양한 결합 형태를 가진 네트워크조직으로 변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정보시대의 지배적 기능과 과정은 네트워크를 둘러싸고 형성되며 그런 네트워크의 관계 구조야말로 사회의 지배적 기능과 과정을 결정하고 권력 관계를 역동적으로 조직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지적한다.
노동 부문에 대해 카스텔은 낙관론을 펴고 있다. 지구적 정보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집합적 정체성을 잃고 개별화 분절화하고 있지만 우려했던 대량 실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직업과 고용을 제공하고 있다며 그는 노동에 대한 종말론적 예언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무한경쟁에서 고통 받는 지구촌 노동자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책은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1990년대 말까지 경제 사회 변화를 충실히 분석하고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실 분석에 비해 미래 예견은 다소 부족한 편이며 그것마저 상당 부분 현상 유지 수준에 그친다. 특히 미래 노동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 공공부문이 국제 경쟁에서 계속 제외될 것이라는 전망, 미래의 네트워크 교육 가능성에 대한 저평가 등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미래 사회의 모습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보시대의 변화를 종합해서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수많은 자료는 물론, 정보기술 사회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책이다.
/안홍·국회 정책연구위원 greeneworl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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