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헌 책방에서 구한 '한국영화측면비사'(춘추각, 1962)는 옛날 우리나라에도 영화가 있었음을 영감처럼 깨닫게 했다. 나로서는 '한국 영화'의 발견이었다. 무성영화 시절부터 배우로, 감독으로, 제작자로 활동했던 안종화 선생이 영화계에서 겪고 들은 일들을 옛날 이야기처럼 전하고 있는 이 책은 야사와 정사가 뒤섞인 한국영화사의 첫 번째이자 대표작이었다. 우리나라에 영화가 들어온 초기 풍경에서부터 한 시절을 풍미한 변사 서상호, 배우 겸 감독 나운규 같은 스타들의 애환, 가난과 멸시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수많은 영화인들의 땀과 눈물까지 담았다.영화가 재미있고 좋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공부하겠다며 영화과(한양대)에 입학했지만 그때까지도 세상에서 미국영화가 제일 재미있고 최고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겉장이 너덜거리던 허름한 헌 책 한 권은 그런 믿음을 일순간에 바꿔 놓았다. 책에서 전하고 있는 온갖 인물, 풍경이 요지경처럼 떠올랐다. 수준 낮은 엉터리, 싸구려, 저질로 여기던 한국영화가 바로 우리 문화의 얼굴이고 진정 지키고 가꾸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한국영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기도 했고 한국영화사를 제대로 알아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만화에서부터 시작했다. 초등학교 3,4학년 시절의 꿈은 만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땡이' 시리즈(임창)나 '카르타'(이근철), '동물전쟁'(최경), '동경 4번지'(손의성) 같은 만화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제목들이다. 만화만 보며 살 수 있다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느 사이에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기 작품의 주인공을 흉내내는 데서 시작한 만화 그리기를 통해 시간이 갈수록 주변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제대로 모양을 그리기 위해 동물도감이나 식물도감, 무기, 배, 비행기 같은 자료 사진들을 모았다.
영화포스터는 여러 가지로 유용했다. 구하기 쉬웠고 종류도 다양했다. 무엇보다 그림에 도움이 되었지만 영화에 얽힌 잡다한 이야기를 챙기는 재미도 적지 않았다. 결국 만화가가 되겠다던 생각이 중학교 무렵에는 영화로 옮겨갔고, 영화에 관한 것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책이든 자료든 가리지 않고 모았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영화측면비사'는 막연하게 넘치던 열정을 한국영화 쪽으로 분명하게 돌리게 만든 책이었다. 한국영화사를 정리하는 동안 안종화 선생이 쓴 내용 가운데 여러 부분이 사실과 다르고 그에 따른 후세의 오류도 적지 않음을 알게 됐지만 영화사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이유의 8할은 그 책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조 희 문 상명대 예술대학 (한국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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