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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 마음이 등불이다

입력
2003.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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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지음·이학사 발행·2만원

동북아시아권에서 명나라 학자 왕양명(1472∼1528)은 나쁘게 말해 '반동'이거나 적어도 주류 유교에 반기를 든 이단아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이다. 마음은 기(氣)이고 도덕성의 이치는 이(理)라는 구별, 객관 세계에 실재하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해서 지식을 이룩한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 방법 등의 주자학 정통 해석을 모두 거부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은 장유 최명길 정제두 등의 연구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양명학 홀대가 심했다. 그것이 전통인지 지금까지도 국내 유학계에서 양명학 연구는 그리 활발한 편이 아니다.

20년 넘게 양명학이란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소장 철학자 영남대 최재목(44·철학) 인문학부 교수의 '내 마음이 등불이다'는 그런 학계 풍토 때문에 더욱 의미 깊은 책이다. 전문 연구자를 위한 논문 일색이던 국내 양명학 연구는 최근 최 교수의 저서 몇 권을 비롯해 연구 서적이 잇따르면서 위축된 분위기를 털어내고 있다.

최 교수의 이 책은 왕양명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일대기를 꼼꼼히 살피는 작업을 뼈대로 하고 있는 왕양명 평전이다. 국내 학자가 직접 쓴 평전으로는 처음인 데다 저자의 표현대로 문학에서 작가의 일대기와 작품론을 한 데 모아 낸 것처럼 양명학 창시자의 삶과 사상 세계가 한 권에 어우러져 있어 양명학의 진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주자학을 배워 주류 사회에서 평생토록 관직을 누렸으면서도 그 학문에 반기를 들고 늘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양명학 이론을 설파했던 학자 왕양명의 면모가 충실하다.

양명학의 핵심은 56세에 전장의 피로와 병이 겹쳐 이승을 떠나기 전 왕양명이 내놓은 유명한 4구결(句訣)에 담겨 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무선무악시심지체, 유선유악시의지동, 지선지악시양지, 위선거악시격물'(無善無惡是心之體, 有善有惡是意之動, 知善知惡是良知, 爲善去惡是格物). 마음의 본체는 원래 선과 악이 따로 없는 것이며, 선과 악이 나타나는 것은 뜻의 작용 때문이다. 선과 악을 구별해서 아는 것은 참된 앎(良知)이며, 선을 행하고 악을 버려 마음의 본체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뜻이다.

양명이 체계를 세운 심학(心學)의 요체는 말년에 주자학 이론에 따라 정좌(靜座)에 열중하던 서파석(徐波石)이라는 사람을 만나 나눈 대화(369쪽)에서도 드러난다. 한 자리에서 사물을 파고 드는 그에게 양명은 "본체에 어찌 한정된 장소가 있겠는가? 빛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네. 등불에만 있는 것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고정된 장소, 정좌라는 한 방법에만 양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또 언제 어디에서든 스스로 양지를 깨닫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특히 단순히 양명의 삶을 좇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 양명학 시조인 나카에 도주(中江藤樹)가 양지를 상제(上帝)로 이해하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거기에 이르는 절대적 양지 신뢰·신앙의 사상을 만든 것이 훗날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무교회주의를 낳은 이론적 토대가 됐을 것이란 해석도 덧붙이고 있다. 이미 단행본으로 낸 동아시아의 양명학 연구 현황과 주자학과 양명학 이론의 도표 설명을 부록으로 붙여 이해를 도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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