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독일은 히틀러 분서사건 70주년을 맞는다. 아돌프 히틀러가 제3제국 총통에 취임한 것은 1933년 1월30일이다. 그 다음달인 2월에는 제국의회 방화사건이 있었고, 3월에는 다카우 부근 옛 화약창고에 최초의 집단 강제수용소가 설치됐으며 4월에는 유대인 상점 불매운동과 유대인 관료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5월10일 바로 그 참사가 일어났다. 책의 화형식인 분서사건이 그것이다.나치에 의해 '비독일적 정신'으로 규정된 책들이 도시 광장에 마련된 화형장에서 공개처형됐다. 작가 알프레드 되블린, 토마스 만, 쿠르트 투홀스키, 막스 브로트,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반나치 지식인 131명의 저서가 그렇게 불 속에 던져졌다. 사실상 비판적 지식인 처형이나 다름 없던 이 분서사건 때 히틀러의 멸망은 이미 예고됐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어쨌든 1933∼1945년의 독일 현대사는 히틀러 없이는 씌어질 수 없다. 그리고 전후 독일의 역사는 바로 이 히틀러라는 이름의 재앙으로부터의 길고 끔찍한 탈출, 재활, 복권의 과정이었다. 70년 전 책의 화형장이 된 도시 광장에서는 히틀러의 이 야만적 가학을 기억하기 위한 지식인들의 대대적 낭독회가 열린다.
히틀러 통치 시작에 분서사건이 있었듯 그의 통치 종말에도 책 한 권이 있었다. 독일문학의 '일리아스'로 불리는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가 그것이다. 독일군의 지옥이 된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히틀러의 충복이자 비밀경찰 게슈타포 창설자인 괴링은 패색 짙은 독일군에게 '니벨룽의 하겐처럼 주인을 위한 영웅적 죽음을 조국에 바치라'고 연설했다. 하겐은 자신의 군주를 위해 영웅 지그프리드를 암살하고 결국 그의 아내 크림힐트에 의해 신검 발뭉으로 목이 잘리는, 충신과 암살자의 두 얼굴을 가진 재앙적 인물이다. 독일 중세문학 최고의 완성미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리스 비극이 지닌 저 조각적 비창함―사랑의 불, 권력의 광기, 복수의 피, 그리고 영원한 물음인 나의 정의와 타인의 정의에 대한 대극―으로 숨막히는 탄력과 탄성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 추정되는 일곱 개의 양피지가 오스트리아 도나우 강변 도시 츠베틀에서 한 예술사가에 의해 발견돼 화제다. 가죽에 갈색문자로 씌어진 이 필사본은 흐릿한 문자를 육안으로 판독할 수 없어 자외선을 통해 읽어낸 모양이다. 물론 이 중세의 편린은 곧 고생물학자, 화석학자, 필기 염료 연구가들에 의해 철저한 검증을 받게 된다. 천재 무명시인의 이 명품 서사시는 지금까지 34종의 필사본만이 존재한다. 히틀러 분서사건 70년 후, 독일은 그들 이념의 감옥이었던 민족주의, 국수주의를 극복하고 혈통, 영토, 화폐를 초월한 유럽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어 세월의 힘을 느끼게 한다.
강유일 소설가 독일 라이프치히대 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