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복사기와 스캐너만 있으면 수표 복사는 단 몇 분만에 끝납니다."유가증권 위조혐의로 3일 서울 동부경찰서에 구속된 김모(21·무직)씨는 경찰에서 수표위조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초 자신의 집에서 컬러복사기와 스캐너로 10만원권 수표 100장을 위조한 뒤 30여장을 신원확인을 잘 하지 않는 담배가게나 택시기사 등을 상대로 사용하고 거스름돈으로 현금 200만원을 챙겼다가 덜미를 잡혔다.
컬러복사기와 스캐너만 있으면 OK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컬러복사기, 스캐너 등 고성능 사무기기 보급이 일반화하면서 수표, 어음, 상품권 등 각종 유가증권의 위·변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과거 1만원권 위폐가 성행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복사기술의 발달 등으로 육안으로는 진품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고액의 위·변조 유가증권이 크게 늘고 있어 피해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들어 5월 초까지 접수된 유가증권 위·변조 범죄건수는 모두 16건에 금액만 900억원이 넘는다. 더구나 최근들어서는 유가증권이 어음, 상품권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인천에 사는 김모(49)씨 등 2명은 지난 2월 10만원권 중소기업은행 수표를 무려 500억원 짜리 수표로 변조해 사용하려다 적발됐다. 오모(38)씨 등 2명도 10만원짜리 위조 백화점 상품권 2만장(20억원어치)과 주유상품권 27억원 어치를 유통시키려다 최근 붙잡혔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영세 중소기업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위조 어음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250억원 상당의 위조 약속어음을 유통시킨 일당이 7일 붙잡힌 데 이어 9일에는 20억원어치의 위조어음을 할인 판매한 일당이 검거됐다. 유가증권 위·변조는 청소년들에게 퍼져 모 고교 1학년 최모(15)군은 유흥비 마련을 위해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 스캐너를 이용, 1만원권 40장을 위조해 사용하다 9일 붙잡혔다.
유통업체와 당국 비상
유가증권 위·변조가 극성을 부리면서 유통업체나 금융 및 수사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S백화점은 1만원권 지폐처럼 숨은 그림과 은색선을 넣어 위조방지 기능을 강화한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는 등 백화점마다 위조 상품권 예방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간지나 생활정보지 등에 '어음 쓸 분', '당좌 폭탄세일' 등의 광고를 버젓이 낸 뒤 영세업자들을 상대로 위조 어음을 장당 130만∼150만원씩 판매하는 전문 어음 위조범이 판을 쳐 금융감독원이 최근 '어음 경계령'을 내리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기 불황 등의 여파로 유가증권 위조 사범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수표나 어음을 받을 경우 지급은행을 통해 반드시 위조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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