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특검에 출두한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의 '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2000년 8월 당시 김씨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엄씨는 "총재 부임 이후 김씨를 만났더니 '산은 대출금 4,000억원은 우리가 만져보지 못한 돈이라 갚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즉 김씨는 이 사건의 '발원지'이자 4,000억원 대출의 최고 책임자로서 대출 전후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엄씨의 국회 증언 직전 미국으로 출국했던 김씨는 그 동안 언론과 측근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간간이 피력해 왔다. 지난해 11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4,000억원을 이유없이 대출받으려는 것을 대표이사로서 완강히 거부했다. 대출서류에 자필 사인이 없고 직인만 찍혀 있는 것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졌다는 증거"라며 엄씨의 의혹제기와 일맥상통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자신의 퇴진 경위에 대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걸핏하면 현대상선에 '이상한 뭉칫돈'을 요구해 이를 거부하다 사표까지 냈다"고 말했고 지난달에는 "청와대와 국정원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현대상선 계좌를 빌려줬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정 회장과의 대립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김씨가 사건 전말을 숨김없이 털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그러나 김씨가 최근 정몽헌 회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 현대 핵심 관계자들과 함께 이종왕 변호사를 공동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당사자들이 같은 변호인을 선임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초 지난달 29일로 예정됐던 귀국 일정을 일주일 이상 늦춘 것도 현대측과의 사전 입장조율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김씨는 누구보다도 '현대맨'으로서의 자긍심이 강한 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특검 출두 하루전인 8일 밤 기자들과 만나 "엄 전 총재의 발언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진 빚은 사랑의 빚밖에 없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 여운을 남겼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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