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땀시 결혼했어. 친정 집에 암것도 없었다 항게는. 그리서 그마 입이나 덜라꼬 시집 보낸기라. 시집이 뭐인지 내가 어케 알아, 암것도 몰랐어.”경남 거창 구수마을의 이씨 할머니(71)는 그렇게 열 네 살에 결혼했다. 남편은 술 마시고 노름하는 데 정신이 팔렸지, 시어머니는 맨날 구박에 매질이라, 사는 게 형편 없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허리 펼 새 없이 일만 하고 하도 못 먹어서 입이 돌아갈 만큼 말랐었다니, 그 마음 고생 몸 고생이오죽 했을까.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여자 이야기’(디새집 발행)에 실린 70ㆍ80대 할머니 여섯 분의 이야기 중 하나다. 사진작가 유동영ㆍ허동영씨가 강원ㆍ전라ㆍ경상ㆍ충청도 시골을 찾아가서 할머니들을 만나 직접 듣고 사진을 찍어 구술 그대로 정리한 책이다. 투박한 사투리로 할머니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한결같이 지지리도 못나고 모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시집 가서 등짝이 휘도록 일하고 자식을 기르며 억척스럽게 세월을 견뎌왔다.
돌이켜보면 억울하고 한스러운 마음이 왜 없을까. “그저 나 사는 동안은더 좋은 시상이 안 나올랑갑소”(전라도 선정마을 금산댁 할머니ㆍ81), “아, 시방 한심하다구요. 우리 동네도 날처럼 고생한 사람이 없어. 호강 인제 할 새가 어디 있소. 다 죽게 된 기.”(강원도 워래골 김씨 할머니ㆍ79), “나도 편하게 사랑받으믄서 살고 싶었지”(강원도 안평마을 이씨 할머니ㆍ82) 같은 할머니들 말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이 책은 오래 동안 볼 수 없던 구술 자서전의 등장이란 점에서 반갑다. 1980년대 뿌리깊은나무가 펴낸 민중자서전 시리즈 이후로 구술 자서전은 책방에서 사라졌다. 구술 정리는 품이 많이 들지만, 날 것 그대로의 진솔함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억센 사투리로 이어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단정한 표준말 문장의 매끈한 이야기보다 더 호소력이 강하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온 것도 즐거운 일이다.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그들의 이야기를 구술자서전으로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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