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투스 B 드뢰셔 지음·이영희 옮김 이마고 발행·1만8,000원
동물행동학을 창시한 콘라트 로렌츠(1903∼1989) 이래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가장 보편적 시각은 '약육강식'이다. 먹잇감을 구해 배를 채우고, 번식을 위해 짝을 구하는 생존 본능이 모든 것에 우선하며 이를 위해 동물은 힘이 센 놈을 중심으로 질서를 잡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동물행동 연구가이며 심리학자인 드뢰셔는 이 책에서 기존의 동물 행동 연구가 너무 편협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타적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오로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동물사회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제인 구달, 스텔라 브루어, 다이앤 포시 등 여성학자들의 동물 연구 결과가 실증하고 있다. 저자는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동물의 '인간적' 모습을 종합해서 정리했다.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사바나개코원숭이 사회에서 공격적 수컷은 무리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패배자에 불과하다. 암컷은 힘센 수컷의 폭력이나 횡포를 간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을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집단으로 훈련한다. 난쟁이 몽구스나 기러기류의 경우에도 힘이 세다고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사회생활을 잘 해낼 수 있는가가 우두머리가 되는 관건이다.
자신의 힘이 부족하면 깨끗이 승복하고 항복의 표시를 하며 싸움에서 이긴 동물은 항복한 상대를 결코 해치지 않는다. 또 같은 종끼리 암컷이나 영토를 놓고 싸울 때 동물은 상대에게 치명적 독이나 뿔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독이나 뿔은 단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책에는 원숭이류를 비롯해 돌고래 코끼리 사자 얼룩말 등 200여 종의 다양한 동물이 예로 등장한다. 여성 학자들을 선두로 해서 동물행동학 분야에 업적을 남긴 150여 학자의 연구 결과도 언급되고 있다.
저자는 물질 문명의 발달로 인한 비인간화, 공동체 파괴, 각종 사회 범죄 등 인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동물 사회로부터 배워야 할 것을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만약 회사처럼 운영되는 늑대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는 자멸할 것이다" 늑대 무리에 분쟁이 생겼을 때 우두머리는 놀랍게도 절대로 물거나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우호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폭군과 같은 우두머리 늑대가 있다면 그 밑의 늑대는 우두머리를 민주적으로 '폐위'한다.
책의 목적이 동물이 인간보다 낫고 인간이 거기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이 동물의 생존을 위해 부여한 원칙을 새롭게 발견하고 존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머리말이 의미심장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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