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페라 "투란도트" 리뷰/규모에 놀라고 色에 더 놀란 "봄밤 향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페라 "투란도트" 리뷰/규모에 놀라고 色에 더 놀란 "봄밤 향연"

입력
2003.05.10 00:00
0 0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에 관심을 모은 것은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을 재현한 길이 150m, 높이 45m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무대였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된 후 관객은 형형색색의 의상과 조명에 탄성을 흘려야 했다. 장이모 감독이 연출한 야외 오페라 '투란도트'(자코모 푸치니 작곡)가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막이 올랐다. 경기장에 입장한 2만 6,000여 관객이 처음 본 것은 '공연의 막이 올랐다'는 표현이 머쓱할 정도로 거대한 무대였다.무대 중앙에는 자금성의 본전인 태화전을 재현했고, 그 아래로는 극중의 병사들이 수시로 밀어 위치를 바꿀 수 있게 설계된 4개의 전각이 자리잡았다.

태화전 뒤로도 겹겹으로 세워진 누각의 위쪽으로는 오색 구름과 둥근 보름달을 설치했다. 스탠드 동편 전체를 양쪽으로 덮은 회랑에는 연등이 달렸고 붉은색, 때로는 푸른색 조명이 은은하게 비친다. 전체적으로 관객의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색이다. 카를로 팔레스키가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국립 교향악단의 악보를 밝히는 주홍빛 불빛도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거대한 무대에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살펴 보면 그리 정교한 무대는 아니다. 규모는 1998년 자금성 공연 때의 2배였지만 공연이 끝나면 철거될 임시 무대이기 때문에 역사적 건축물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그 한계를 메워준 것은 경기장 천장과 무대 양 옆, 무대 정면 스탠드 등에 준비된 2,000여 개의 조명이었다. 특히 경기장측과 협의 끝에 어렵게 설치된 천정 조명은 무대를 파스텔톤의 보라색, 붉은색, 푸른색으로 꾸며나가며 기존 공연장 조명보다 훨씬 다채로운 효과를 선보였다.

조명은 영화에서 색채의 마술을 펼쳐 온 장이모 감독의 야심작이었다. "조명을 강화해 98년 때보다 화려한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그의 장담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최근 영화 '영웅'을 본 관객은 극 중에서 검은 색으로 통일된 베이징(北京) 백성들의 복장이나 병사들의 배치 등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할 수도 있다. 그 위로 병사들과 무용단, 색색의 옷을 입은 핑, 퐁, 팡을 위시한 관리들과 투란도트 공주, 칼라프 왕자를 거쳐 황금색 옷의 황제까지 600여명의 출연자가 빚어내는 색채의 향연이 계속된다.

하이라이트는 1막 칼라프 왕자가 투란도트 공주가 낸 수수께끼에 도전하기 위해 징을 세 번 치는 순간이었다. 전체적으로 푸른 톤의 조명은 일순 장 감독의 특유의 핏빛으로 변했고, 관객은 이 멋진 순간에 박수를 보냈다.

박수는 칼라프 왕자 역의 니콜라 마르티누치, 투란도트 공주 역의 조반나 카졸라에게도 집중됐다. 투란도트 출연진으로는 세계 최고급인 이들의 조화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2막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오만하고 얼음장 같은 투란도트가 서릿발처럼 "수수께끼는 3개, 죽음은 하나"라고 외치면 칼라프는 뜨겁고 당당한 목소리로 "수수께끼는 3개, 생명은 하나"라고 맞받아친다. 얼음과 불의 조화였다. 칼라프의 시녀인 류의 죽음장면에서는 류의 영혼을 하얀 부채로 상징해 하늘로 올라가는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장 공연의 한계는 역시 지울 수 없었다. 우선 무대가 지나치게 컸다. 600여명의 출연진이 모두 등장해도 무대는 비어보였고, 동선이 너무 길어 실제로 활용된 무대는 직경 50m 정도였다. 양 옆의 회랑을 활용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한편으로 그라운드에 설치된 고급 관람석은 오히려 무대를 위로 올려다봐야 하기 때문에 장시간 감상은 상당한 목 고문이 됐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로 보아 쌍안경이 없으면 색동 개미들의 행진처럼 봐야 했고, 양 옆의 스크린의 클로즈업 화면은 한 사람만을 제대로 담는 데 그쳐 다양한 표정 연기를 보고 싶어 했던 관객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음향 부분에서도 지적이 많았다. 성악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너무 작고, 군데군데 잔향이 심하거나 귀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공연이 원래 이벤트 성격이 강한 것임을 감안하면 크게 문제삼을 부분은 아니다. 다만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최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의외의 장소에서 벌어졌다. 밤 11시가 넘어 끝난 공연 때문에 지하철이 끊겨 관객들이 도심 곳곳에서 발을 굴러야 했다. 8일은 휴일이어서 지하철 연장운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최측은 "첫날이라 공연이 다소 길어졌다"며 "일요일 공연 때는 서울시측에 8량의 추가 운행을 요청해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이 없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11일까지. 5월의 월드컵경기장은 초겨울 날씨여서 두터운 옷이 필수다. (02)3473―7635

/홍석우 기자 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