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조상은 하나같이 자유를 사랑하는 영웅들이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세상보다 가장 위대한 나라에 그들은 태어났다. 미국은 전쟁시에 무적이며, 평화시에 현명하다. 미국인은 언제나 마르크스주의자와 인디언,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이웃이나 열등한 자를 명예롭게 대우해 왔다.'미국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이 1960년대 초반 '신화 수집'이라고 비판한대로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머리 속에서 '조국 아메리카'는 훌륭한 나라이다. 국제 사회의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이라크 전쟁을 감행한 지금 이 순간에도 조지 W 부시 정부를 지지하는 적잖은 미국인들은 이런 감회에 젖어 있을지 모른다.
실용주의 철학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인 로티는 그 자신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이며 보수 자유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우파의 이런 근거 없는 신념을 거부한다. '근본적으로 우파는 이 나라가 훌륭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것도 많이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티는 90년 대 중반 강연을 모은 정치 에세이 형태의 이 책에서 좌파를 '희망의 정당'이라고 부른다. 책에 '20세기 미국에서의 좌파 사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도 '미국이 아직 이룩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좌파에게 미국의 '정치 생명이 지속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로티의 미국 좌파론은 그들에 대한 희망이나 친근감의 표시라기보다 오히려 잘못된 길로 들어선 좌파 비판에 집중된다.
표적은 미국이 용서 받을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을 목격한 베트남 전쟁 후의 좌파들이다. 로티는 좌파가 그렇게 서성거리는 한, 국가적 자부심을 갖지 못한 채 남아 있는 한 정치적 좌파는 고사하고 잘 해야 문화적 좌파에 머물 뿐이라고 지적한다.
로티의 시각에 따르자면 그 자신까지 좌파 범주에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미국 만들기' 목표는 분명하다. 자유와 다양성, 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미국인을 결집하려 했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와 시인 월트 휘트먼 식의 국가 창출이다.
'이 두 사람은 미국인이 자신을 끊임없이 예외적 존재로 생각하기를 원했지만 어떤 권위에 복종하는 것보다 그 자체의 관점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데 자부심을 느꼈으면 하고 바랐다'고 로티는 썼다. 그에게 진보는 '조금씩 점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어떤 것이다. 매우 현실적이고 자유분방한 사고 틀로 미국 사회를 새롭게 엿보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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