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전국운송하역노조 산하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처리방식은 참여정부 노동정책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 분명하다. 춘투(春鬪)가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입지에 처해있는 참여정부의 앞날은 더욱 험난할 수 밖에 없다.이런 절박함 때문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화물차량 파업 문제를 먼저 꺼내면서 사태의 윤곽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부처 장관들의 무사안일을 질타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행동을 '국가 안전질서를 해치고 실력으로 도시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노 대통령의 이런 자세는 참여정부 노동정책이 지나치게 노조편향적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의식한 측면이 강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부가 사측에 압박을 가해 타결된 두산중공업 노사분규나 노조의 민영화 철회요구를 수용한 철도사태 해결과정은 참여정부가 친(親) 노조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참여정부 노동정책의 기본방향은 노사간 '힘의 균형'을 통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정립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힘의 균형'이란 현실적으로 약자인 노측을, 강자인 사측과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친 노조적이라는 평가를 부인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노사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정말 힘의 균형인지 의심스럽다. 전체적으로는 사측이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지적이 맞지만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대기업 노조, 거대 공기업 노조의 경우에는 힘의 '결핍'이 아니라 힘의 '남용'이 더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달 초 모 자동차회사에서는 노조가 연휴 사이에 낀 날을 일방적으로 유급휴가로 정해 휴무를 실시하는 바람에 공장가동이 중단된 일도 있었다. 공기업 경영진들이 노조의 막강한 힘에 휘둘려 소신껏 경영을 하지 못하는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양측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관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중재자가 돼야지,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도 안되고, 그런 오해를 받아서도 안된다. 이번 파업사태를 보며 정말 한심스러운 것은 파업참가자들이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포스코 등 철강공장 정문을 봉쇄해서 산업활동이 마비되는데도 정부가 수수방관해왔다는 사실이다. 화물연대 주장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불법적인 행동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며, 정부가 이를 방치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이는 정부의 나태 때문이라기보다는, 집권세력의 편향된 노사관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경제계의 시각이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정권의 이념성을 의심하고, 앞으로 노사관계에 대해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과거 정치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노사문제가 선진적 경제체제로 가는 데 치명적 장애물이 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2002 국가경쟁력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49개국 가운데 27위를 차지했지만 노사관계의 경쟁력은 47위로 최하위를 맴돌고 있다.
노 대통령은 노사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로 자부해왔다. 그 자신감이 빈말에 그치지 않고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노사관계를 상생의 생산적 관계로 변화시키는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배 정 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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