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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향기의 문 연 한택 식물원/ 금낭화… 하늘매발톱… 개족도리… 깽깽이풀… "이름을 불러봐요… 미소로 답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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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향기의 문 연 한택 식물원/ 금낭화… 하늘매발톱… 개족도리… 깽깽이풀… "이름을 불러봐요… 미소로 답할거예요"

입력
2003.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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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으로 농익은 봄기운이 터질듯하다.금낭화 하늘매발톱 산작약 좀비비추 연영초…. 우리 꽃들의 소박한 몸짓이 산 자락을 물들이는 곳, 경기 용인시 백암면 옥산리의 한택식물원이 2일 향기로운 문을 열었다.

한택식물원은 20여 만평 규모에 토종 수목 1,000여종, 꽃 1,200종 등 6,000여종의 식물이 오밀조밀 키재기를 하고 있다. 재배 단지인 서원(西圓)과 20개의 테마정원으로 꾸며진 동원(東圓) 중 동원(5만평)만 공개된다. 개원 첫날 식물원을 찾은 인터그래프코리아(주) 이진호(38) 차장 가족이 친구에게 들꽃 편지를 띄웠다.

자네, 꽃 바람 맞아본 적 있는가.

허허, 마흔 줄에 웬 꽃타령이냐구. 하긴 상현이(4) 엄마에게 장미꽃 들이밀기도 쑥스럽던 내가 봐도 우습네. 아내에게 "식물원엔 왜 가?" 했다가 "동물원엔 왜 가요" 하는 구박 받고 주섬주섬 짐 꾸릴 때만 해도 "지천이 꽃인데…." 궁시렁 대던 날세.

"사라진 우리 꽃이 자연 상태로 보존된 동양 최대 식물원"이라는 아내의 설명을 듣고 식물원에 들어서자 그윽한 거름냄새와 향긋한 꽃내음이 우릴 맞네.

단풍 길을 따라 늘어선 '하늘매발톱' 자주색 꽃을 보고 아이와 더불어 "와∼" 탄성을 질렀네. 귀동냥으로 들으니 꽃잎 끝이 매 발톱을 닮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네.

자생붓꽃 등을 심은 아이리스원과 각양각색의 원추리원은 아직 꽃이 맺히지 않아 그냥 풀숲 같지만 눈 여겨 보면 한층 한층 줄기 올라오는 모습이 대견하네. 성미 급한 이들은 안에 마련된 촬영석에 앉아 방긋 포즈를 취하네. 푸른 원추리에 도드라져 웃는 낯이 꽃처럼 아름다워 우리 식구도 찰칵!

자연생태원은 가물가물 기억 속에 남은 들꽃을 만날 수 있어 마치 고향 집 뒷산을 옮겨놓은 듯 하네. 비탈 가득 토종 야생화들이 자태를 뽐내고 도란도란 계곡물 흐르는 정취를 꼭 느껴보게나. 개구쟁이 시절 싸잡아 '들꽃'이라 부르던 놈들도 "개족도리 땅나리 깽깽이" 하고 제 이름을 불렀더니 활짝 웃어보이네.

감회도 잠깐, 상현이의 "이게 머야" 하는 질문 공세가 이어지네. 혀도 안 돌아가는 애에게 대충 알려줘도 그만이련만 굳이 안내원을 붙잡네.

거 있잖나, 잎이 써서 나물 무쳐 며느리한테 줬다고 해서 '며느리취'라고 부르던 거. 줄기마다 20개 남짓 연분홍 꽃이 열려 이름과 안 어울린다 했더니 비단주머니를 가리키는 '금낭화'라고 한다네. 어디 그뿐인가. 꽃피기 전 모습과 색깔이 팥 같다고 해서 팥꽃나무, 족도리를 닮았다고 해서 족도리풀, 제비 올 때 핀다고 해서 제비꽃….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오르면 꽃 바람과 꽃 염색된 식물원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네. 절벽 돌 틈마다 식물을 심은 월가든과 백두산바위솔 등 300여종의 고산식물이 자라는 암석원도 절경이네.

산벚나무 그늘 아래 자라는 수선화 튤립 백합은 온실에서 더위 먹이고 독한 약 먹여 키운 것들과는 청초함이 다르네. 덩굴식물원과 수생식물원 침상원 등도 직접 와서 보게나.

식물원 구경은 바삐 움직여 볼장 다 보는 전시회가 아닐세. 느긋한 마음으로 백송 길을 노닐고 120m 잔디공원을 맨발로 거니는 것이 즐거움일세.

그러다 보면 그늘 찾아 엉덩이 비벼대며 꽃 뭉개는 모습에 가슴이 시릴 걸세. 식물원에 가거든 풀 한 포기라도 즈려 밟지 말게나.

상현이 머리 속에 꽃을 몇 개 채웠나. 우물거리던 아이가 "내꽃, 내꽃! 매발톱" 하며 손가락을 오므려보이네. 하여 우리 내외도 비탈 중간에 고운 자태로 정답게 피어있던 산작약 한 쌍을 우리 꽃으로 정했네. 다음에 오면 백합이 만발하겠지. 아직도 하얀 산작약의 노란 속살이 눈에 선하네.

추신

영동고속도로 양지IC를 빠져 나와 17번 국도를 타고 백암면을 지나 삼죽 방향으로 꺾으면 이정표가 보이네. 시장하면 백암에서 따끈한 순대국밥 한 그릇 맛보게나. 식물원 입장료는 어른 7,000원(주말 8,500원) 청소년 5,500원(6,000원) 어린이 4,000원(5,000원)일세. 문의 (031)333-6483

/용인=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이택주 원장 "야생화와 함께한 20여년…저도 닮아가요"

구릿빛 얼굴, 하얀 머리칼, 환한 웃음이 마치 한 떨기 소담스런 야생화를닮았다. 한택식물원 이택주(62) 원장은 “20여년을 꽃과 함께 산 덕분”이라고 차분히 말했다.

그가 식물원을 꾸미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사업으로 번 돈을 들여 목장을지었으나 ‘한우파동’으로 망했다. 그 뒤 “산사태를 막아보려고 나무를심은 게 시작”이라고 했다.

국내에 변변한 식물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골 저골 우리 산천을누비며 토종 꽃씨를 구했다. “자생식물을 살 수도 없고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어 애를 먹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24년을 일궈 2,000종이 넘는 자생식물을 기르고 50여종의 새 품종을 만들어냈다. 또 자생지에서조차 보기 힘든 동강할미꽃 등 희귀식물의안전한 피난처가 되고 있다.

그는 식물원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유독 목소리가 커졌다. “호랑나비는 산초나무, 산호랑나비는 백선, 모시호랑나비는 족도리풀에 알을 낳아요. 식물종이 다양하면 동물종도 다양해집니다. 자연생태의 기본인 식물을아끼고 보호해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이곳에 식물연구단지를 세우고 관련 도서 및 장비 판매, 우리꽃 분양도 하고 자원봉사자도 모을 생각이다.(문의 031-671-5666)

궁금한 거 한가지. ‘한택(韓宅)’은 무슨 뜻인가요. 이 원장의 너털웃음. “그거 집사람이 작명소에서 받아온 거야, 별 뜻 없어.”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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