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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도/얍! 탁! "아빠 한 판 겨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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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도/얍! 탁! "아빠 한 판 겨뤄요"

입력
2003.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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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허리!" "손목! 머리!"몇 차례의 힘찬 구호가 도장의 무거운 공기를 뒤흔든다. 호구로 가려져 표정을 가늠하기 어려운 두 사람. 엇갈린 죽도와 함께 숨도 멈춘 채 상대의 작은 흔들림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호구 뒤로 날카로운 눈빛이 쉴새 없이 번득인다. 순간 맨발이 마룻바닥을 힘차게 구르는 소리. "머리!"라는 구호가 정적을 찢고 죽도가 정확하게 상대방의 호면을 내리친다. 경기 종료.

"검도 경기를 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죽도를 마주한 채 정지하는 몇 초입니다. 단순히 숨을 멈추고 있는 게 아닙니다. 마치 바둑을 하듯이 상대방의 수를 읽고, 내 수를 계산하고, 거기에 대한 상대방의 수를 예측하고…. 1초 동안에도 수백번의 두뇌싸움이 둘 사이의 공간을 오갑니다. 그리고 먼저 계산을 끝낸 사람이 죽도를 드는 거죠."

서울 광진구 자양동 '무한 검도장' 이상지 관장은 검도의 진정한 매력은 정적에서 움직임으로, 움직임에서 정적으로 이어지는 수읽기와 그 안에서 오는 깨달음이라고 설명했다.

검도는 사방 11m의 정사각형 안에서 5분 동안 2점을 먼저 따면 이기는 경기다. 적정한 기세와 적법한 자세로 기·검·체 일치되게 머리, 허리, 손목, 찌르기 중 하나를 성공시키면 1점이다. 기·검·체란 기합, 죽도, 몸을 뜻하는 것으로 확실하게 의도하지 않은 공격은 점수로 치지 않는다. 5분이 되기 전에 2점이 나면 경기가 끝나고 5분까지 한 점이라도 더 딴 사람이 있으면 승자가 된다. 계속 승패가 나뉘지 않으면 30분이건 3시간이건 경기는 지속된다. 현재 대한체육회에서 인정하는 검도는 이와 같은 경기 종목을 뜻한다. 앞에 아무런 수식어가 붙지 않으며 공인된 도장에는 '대한 체육회 공인도장'이라는 간판이 붙는다.

흔히 검도는 스포츠보다는 정신 수련에 가깝다고 생각해 몸을 움직이는 시간보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시간이 많다고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검도장에서 가만히 앉아 명상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검도는 '동선(動禪)'의 운동입니다. 움직임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죠. 검도를 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부터 검도장으로 오는 길, 호구를 입는 것, 돌아가는 것까지 모두 검도의 과정에 포함됩니다. 과정 안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따로 수행을 하지는 않습니다."

깨달음이라니, 무엇에 대한 깨달음을 뜻하는 걸까? 이 관장은 '모든 깨달음'이라고 답한다. 모든 단계에 정성을 들이면서 검도 기술에 관한 물리적 깨달음부터, 자기 자신과 인간관계에 관한 많은 깨우침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는 뜻이다.

이 같은 깨달음과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은 신체적 건강이다. 검도는 모든 과정에서 단전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몸의 균형을 찾고 약한 곳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팔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과정에서 어깨를 많이 쓰기 때문에 컴퓨터의 오랜 사용으로 어깨와 목이 굳어진 직장인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검도는 조깅이나 수영과 달리 함께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다. 10분만 경기를 해도 도복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힘이 들기 때문에 사부의 가르침에 따라 움직임과 쉼을 반복해야 무리 없이 운동을 지속할 수 있다. 또한 상대방과 마주해 겨루는 과정이 중심이 되므로 검도를 독학했다거나 혼자 즐긴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함께할 사람 없이 도장에 가도 문제는 없지만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하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 관장의 부인과 세 자녀도 5년 전부터 검도를 즐기고 있다.

"사실 가족이라고 해도 하루 한 번 마주하기 어려운 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할 일이 많으니까요. 검도를 가족과 함께 하면 마주 선 채로 상대방을 몇 분에 걸쳐 뚫어지게 바라보게 됩니다."

이 관장 역시 작년에 첫째딸 효인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빠와 딸 사이에 으레 갖게 되는 서먹서먹함을 겪었다. 이 관장은 칼을 마주 하고 서로를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비를 넘기고 다시 다정한 부녀 사이로 돌아왔다고 설명한다. 검도를 하며 끊임 없이 얻게 되는 깨달음에 대해서는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공통된 마음인지라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사람과 사람이 술 없이, 밥 없이, 혹은 계약서 없이 오직 마주한다는 목적으로 함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호면 넘어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찰나, 오랜 시간 쌓아 왔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보호장비 30만원선 "반영구적"

검도하면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와 펄럭이는 도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폼생폼사'를 인생 철학으로 삼던 중·고등학교 시절 검은 도복에 매료돼 검도부를 꿈꾼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모양새도 중요하지만 검도는 칼을 쓰는 운동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도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머리를 보호하는 '호면', 가슴을 보호하는 '갑', 허리에서 무릎을 보호하는 '갑상', 손목을 보호하는 '호완'을 통틀어 '호구'라고 부른다. 이 네 가지를 합친 구입비용은 25만∼35만원 선으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검도의 핵심이 되는 장비는 역시 검이다. 시합에서 사용하는 것은 대나무로 만든 죽도. 성인 남성용은 120㎝에 510g, 여성용은 120㎝에 420g으로 규격이 정해져 있지만 굵기나 마디의 위치 등 세세한 부분은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굵기는 손에 가볍게 쥐었을 때 남거나 모자람이 없이 쏙 들어가는 것이 좋다. 죽도의 3분의 1 지점에 묶인 가죽인 '중혁'에서 앞뒤로 주먹 하나 지점에 대나무의 마디가 위치해야 수명이 길다. 죽도의 가격은 2만∼5만원으로 한 달 정도 사용하는 소모품이다. 시합이 아닌 기본 동작을 공부하는 '본'을 위한 '목검', 4단 이상 보유자만 가질 수 있는 '진검'은 일반 시합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도복은 키와 허리 사이즈를 맞춰 구입한다. 죽도와 마찬가지로 소모품이므로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전문가용은 필요 없고 4만원 정도 하는 일반인용을 구입해 자주 빨아 입는 것이 좋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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