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세제 회사가 식품 사업에 뛰어들어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소비자들에게 제품 시연회를 가졌더니 "아이스크림에서 비누 냄새가 난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광고학 원론'에 나오는 예로 소비자의 고정 관념이란 그만큼 무섭다는 얘기다.1일 개봉한 두 편의 영화 '별'과 '나비'는 배우의 이미지 변신이 바로 '셀링 포인트'인 영화. '별'의 유오성은 처음으로 말랑말랑한 멜로 연기에 도전했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우직한 깡패 역으로 관객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그는 이어 '간첩 리철진' '친구' '챔피언'으로 연기파 배우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의 멜로 연기 변신은 기대감을 배신감으로 바꾸고 전작에 대한 그리움만 남겼다.
김정은이 '나비'에서 보인 멜로 연기는 '재밌는 영화' '가문의 영광', 그리고 몇 편의 TV CF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김정은이 우수에 젖으면 한 카드사의 가을용 CF가 생각나고, 해맑은 모습에서는 전작에서의 능청스러운 애드립 연기를 기대하게 했다. 문제는 '나비'가 매우 전형적인 시대 멜로인 탓에 김정은의 옛 냄새는 외려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유오성이나 김정은 두 사람은 모두 과거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고, 따라서 변신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관객은 그들에게 새로운 아이스크림(변신)이 아니라 때 잘 빠지는 비누(무르익은 연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입이 벌어질 만큼 변신할 수 없다면 차라리 '반복 학습을 통한 성적 향상'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릴 만하다.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에 나온 차승원은 "이제 코미디 좀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선택한 영화('선생 김봉두')에서 '솔로 홈런'을 날렸고, 송강호는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또 다시 '살인의 추억'이라는 다소 하드보일드한 영화로 연기력 칭송을 받고 있다.
신인급 배우들에게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화 '일단 뛰어'로 위밍 업을 한 권상우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거의 만루 홈런을 쳤지만 드라마 '태양 속으로'에서는 말투가 놀림감이 됐을 뿐이다. 드라마 '화려한 시절',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묻지마 패밀리' '품행제로'에서 저소득층 비행 청소년 역할로는 안성맞춤이던 류승범은 드라마 '고백'에서 잘 나가는 세련남으로 나왔지만 어색했다.
누에도 넉 잠을 자고 난 사면잠(四眠蠶)이 돼야 제대로 된 명주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데 하물며 배우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말해 무엇하랴. 막 연기 맛을 알아가는 배우가 섣불리 변신 운운하는 것은 관객에겐 고문이 될 수도 있다. 배우가 무슨 변신 로봇이냐!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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