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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제암산 / "분홍빛 합창" 능선마다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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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제암산 / "분홍빛 합창" 능선마다 메아리

입력
2003.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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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07m. 높이에 비해선 기골이 장대하다. 5부 능선 위로는 모두 바위 덩어리다. 바위 봉우리와 이어진 주능선을 유심히 바라본다. 지금쯤 철쭉이 만개했을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나 능선에서 붉은 기운을 찾을 수 없다. 아직 때가 이른가? 내친 걸음이다. 올라가면 뭔가 보이겠지.전남 장흥의 제암산(帝岩山)은 거의 이름이 나지 않았다. 남도 끝자락에 붙어있는데다, 교통도 불편해 인근의 산꾼만 찾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5월이 되면 사람이 북적거린다. 철쭉 군락이 알려진 탓이다. 능선을 타고 철쭉밭이 이어져 있다. 제암산악회가 주축이 되어 10여년간 철쭉 군락 주변의 등산로를 정비했다. 그래서 이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쉽게 찾아와 분홍빛 화원을 거닌다.

초행길 취재.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인적이 없다. 밭을 가는 마을 어르신에게 길을 묻는다. 말이 조금 어눌한 어르신은 작대기로 땅에 그림까지 그리며 열심히 설명한다. 10여분간의 설명을 간추리면 이렇다. 철쭉 군락은 제암산과 붙어있는 곰재산, 사자산 등과 이어져 있다. 작은 꽃밭부터 시작해 마지막에 큰 꽃밭을 보는 희열을 느끼려면 사자산에 먼저 올라 능선을 타고 곰재산-제암산의 순서로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등산로의 처음은 임도로 시작된다. 임도는 사자산의 두 봉우리인 두봉과 미봉의 9부 능선까지 나 있다. 구불구불한 임도 사이사이 직선으로 산에 오르는 지름길이 있다. 임도의 끝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임도의 용도는 삼림관리보다는 활공 장비 운반을 위한 것 같다.

오르는 길에 철쭉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이 정도를 군락이라고 표현한 것일까. 약간은 실망이다. 임도를 타고 올라온 차가 옆에 서서 창문을 연다. "태워 드릴까잉∼?" 정중하게 거절한 뒤 물었다. "꽃이 피었나요?" "워매, 겁나게 피어버렸제이. 요즘 매일 산에 간당게. 쪼께만 더 올라가 보쇼."

임도의 끝에서 능선에 오르는 길은 약 100m. 가파르다. 땅만 보고 다리에 힘을 주기를 약 10분. 앞이 확 트인다. 주능선이다. 고개를 들었다. "워매!" 외마디 비명이 돌연 전라도 사투리로 튀어나온다. 정말 꽃밭이다. 주위를 맴돌던 시선이 주능선길을 타고 멀리 향한다. 꽃길의 끝이 없다. 연초록의 신록과 분홍 꽃빛의 하모니가 절묘하다.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 곳은 맛배기라고 했어. 진짜배기는 과연 어떨까.'

두봉에 들렀다가 꽃길을 타고 사자산 미봉으로 향한다. 행복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꽃무리가 점점 짙어진다. 미봉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 옆 봉우리인 곰재산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 산이 아니다. 붉은 산이다. 숨을 돌릴 것도 없이 붉은 봉우리를 향해 거의 뛰다시피 한다.

곰재산 능선길은 소나무 몇 그루만 제외하면 모두 철쭉이다. 나무가 사람보다 크다. 꽃송이는 거의 어른의 주먹만하다. 바위에 걸터앉아 무념무상으로 꽃밭을 바라보는데, 꽃 사이로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반대 방향으로 산행을 하는 사람인가 보다. "꽃이 참 좋네요." 인사를 하니 한마디 한다. "이제 시작"이라고.

과연 그랬다. 곰재산에서 곰재를 잇는 능선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이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급경사여서 숨이 턱에 차지만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모두 입을 벌리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곰재에서 제암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는 셈이다.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다가 다리를 쉴 겸 뒤돌아본다. 건너편의 곰재산 철쭉밭이 눈에 들어온다. 꽃이 핀 것이 아니다. 아예 산에 불이 붙었다.

/장흥=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가는길

쉽게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목포까지 간 다음, 2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면 강진을 거쳐 장흥에 닿는다. 2번 국도의 이 구간은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길 잃을 염려가 없다. 장흥읍에서도 계속 2번 국도를 타고 언덕 하나를 넘으면 오른쪽으로 제암산 이정표가 보인다. 서울에서 장흥읍까지 하루 3차례 고속버스가 왕복한다. 서울에서 광주로 가면 오히려 편하다. 광주-장흥간 시외직통버스가 하루 25회 왕복한다. 장흥공용터미널 (061)863-9036.

머물 곳

제암산 입구인 신기마을 쪽에는 숙소가 거의 없다. 장흥읍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것이 좋다. 장흥관광호텔(061-864-7777), 그랜드파크모텔(863-0042), 한솔모텔(862-8336), 샛별모텔(863-6788) 등 장흥읍 건산리 일대에 장급 여관이 밀집해있다. 보성군 웅치면의 제암산자연휴양림(852-4434)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통나무 산막인 숲속의 집이 있고 약 100개의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이 마련되어 있다.

먹거리

장흥에는 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도 있다. 해산물이 싱싱하고 맛있다. 바지락회가 유명하다. 미나리와 식초로 상큼한 맛을 낸 바지락회는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한 음식. 특히 식욕 회복에 좋다. 안양면 수문리의 바다하우스(061-862-1021) 등이 전문으로 한다. 남도 먹거리의 얼굴인 한정식을 빼놓을 수 없다. 장흥군청 옆의 신녹회관(863-6622)이 유명하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온다. 4인 이상 기준, 1인분에 1만2,000원. 읍내의 취락식당(863-9336)은 소 등심을 파는 집. 키조개, 새조개를 함께 굽는 이른바 '삼합구이'를 맛볼 수 있다.

● 제암산 산행법

장흥군 공설공원묘지가 위치한 장흥읍 금산리가 출발점이다. 대부분의 산행 지도에는 신기마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긴 산행을 원한다면 신기마을-사자산 두봉-사자산 미봉-간재-곰재산-곰재-돌탑-제암산-촛대바위코스(혹은 형제바위 코스)-공설공원묘지 순으로 한다. 약 11㎞로 부지런히 걷는다면 5시간30분, 철쭉을 완상하며 천천히 산행을 하면 7시간 정도가 걸린다. 완만한 임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초반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 반대로 방향을 잡아도 되는데, 출발 코스인 촛대바위 코스(혹은 형제바위 코스)가 가파르기 때문에 초반부터 힘이 많이 든다.

산행보다 철쭉감상에 주력한다면 신기마을에서 바로 곰재로 올랐다가 곰재산-간재-임도를 거쳐 하산하면 된다. 꽃밭의 하이라이트가 대부분 이 코스에 밀집해 있다. 2시간30분이면 된다.

반대쪽의 보성군에서 출발하는 코스도 있다. 제암산 자연휴양림이 시작점. 곰재-정상-휴양림의 순서로 산행을 한다. 3.5㎞로 2시간20분 정도 걸린다.

아예 제암산 일대의 능선을 종주하는 길도 있다. 감나무재로 산에 올랐다가 봉우리를 두루 거쳐 사자산 미봉에서 안양면 기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11.7㎞로 약 8시간 걸린다. 기산리로 내려가는 길이 험하다.

산행에 자신이 있는 산꾼이라면 형제바위 코스로 제암산에 올랐다가 곰재-사자산 미봉을 거쳐 보성군의 삼비산까지 가는 코스를 택할 만하다. 삼비산은 최근 철쭉 군락지로 떠오른 산. 능선을 따라 길이 나 있다.

● "장흥의 얼굴" 천관산

장흥에는 산이 많다. 그 중에서도 천관산(723m)을 꼽을 수 있다. 제암산이 봄철 반짝 인기를 누리는 산이라면 천관산은 사시사철 사람들이 찾는 산이다. 도립공원으로 장흥의 얼굴인 셈이다. 정상의 웅장한 기암괴석이 압권이다. 산 아래에서 보면 마치 톱날을 보는 것 같다. 등산로가 쉽지도 어렵지도 않고 변화 무쌍해 재미있다.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하다. 정상부 40만여평의 능선이 온통 억새밭으로 변한다. 지금 억새꽃은 없다. 대신 눈부신 신록이 바위 봉우리 사이로 반짝거린다.

제암산행을 1박 2일로 계획했다면 천관산도 올라보자. 수도권일지라도 부지런을 떨면 첫날 천관산, 둘째날 제암산을 한꺼번에 오를 수 있다. 3시간 30분에서 4시간이면 충분히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온다. 장천재-체육공원-금강굴-환희대-연대봉-양근암-장천재 코스가 일반적이다. 약 6㎞ 정도이다.

바다를 볼 수도 있다. 장흥에서 약 16㎞ 떨어진 수문해수욕장은 맑은 물과 백사장으로 유명한 곳. 득량만을 마주 보고 있다. 여름이면 인근의 피서객으로 번잡하지만 아직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울창한 소나무숲 그늘에서 잔잔한 파도를 감상할 수 있다.

보림사는 가지산 계곡에 숨어있는 고찰. 우리나라에서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이다. 옛 절은 웅장하고 수려했다.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기세가 줄었고, 한국전쟁의 피해를 입어 지금은 소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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